매일신문

지붕 날아갔지만..희망은 아직

"억장이 무너지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봐서라도 끝까지 힘을 내야지요".

대구 동구 공산1동 공산터널~백안삼거리 사이 구암마을. 쓰레기 더미에 뒤덮인 집과 논밭, 앞마당에 쌓인 거대한 바위들의 모습은 폭격을 당한 듯 폐허와 같았다.

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이지만 16일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복구에 땀흘리고 있었다.

태풍 '매미'가 이 마을을 덮친 건 지난 12일 새벽 1시쯤. 폭우로 불어나던 계곡물이 마을 입구에 신축 중이던 교각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마을을 덮쳤다.

주택 45채 중 6채가 물에 잠겼고 복숭아, 포도 등 유실수와 비닐하우스, 과일 보관창고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가재도구를 꺼내 물에 씻어 말리고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웠다.

중장비를 동원해 바위들을 치워내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방제와 내년 농사를 위한 성토 작업에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집이 두 동강난 김성보(73)씨는 임시로 쳐놓은 천막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김씨는 "식수로 쓰던 지하수에 빗물이 유입되는 통에 마시기는커녕 전염병이 돌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김씨의 아내 유옥성(60)씨는 태풍이 할퀴고 간 뒤 남은 것은 찬장과 그릇 몇 개가 전부라고 했다.

유씨는 "휴대용 가스버너로 끼니도 간신히 해결하지만 쓸 수 있는 것이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복구에 매달리고 있다"고 푸념했다.

주민들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로 어려움을 겪자 군장병들이 돕겠다고 나섰다.

공군장병 60여명은 이날 따가운 햇볕 속에도 무너진 축대를 세우고 쓰레기를 치우느라 연신 구슬땀을 흘렸다.

난생 처음 삽질을 하고 축대를 세워봤다는 홍연화(27.여.11비 보급대대)하사는 "TV를 통해 접했던 것보다 훨씬 피해가 심각해 놀랐다"면서 "시름에 겨워할 이재민들이 잘 이겨내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구암마을이 이번 태풍으로 입은 농경지 피해면적은 9천평, 전체 피해액은 10억여원(동사무소 집계)에 이른다.

완전한 복구는 아직 기약조차 없을뿐더러 당장 내년 농사가 더 큰 문제. 다행히 복숭아, 포도 등 과실 수확은 일찌감치 끝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토사에 묻힌 유실수들이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동구청 관계자는 "군병력 2천여명을 동원해 이달 말까지 동구지역의 응급복구를 마칠 계획"이라면서 "주로 유실된 도로와 무너진 둑을 복구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라 농경지에 대한 복구 작업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설명) 하천 범람으로 가옥지붕과 큰방이 날아가버린 대구시 동구 공산1동 구암마을의 한 수해현장에서 수재민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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