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덮친 태풍 매미의 상처는 상상외로, 그리고 날이 갈수록 크게 나타났다.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식물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첫 새벽부터 내리 닷새동안 전 직원이 복구작업에 몰두했어야 했을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쓰러진 나무들은 대다수가 히말라야시더(개입갈나무)였고 포플러와 아카시아나무, 오동나무 등을 비롯한 속성수이거나 뿌리가 얕은 천근성이었고 외래수종이 더욱 심했다.
부러진 나무들은 가지에 해충의 침해가 있었거나 이미 큰 상처가 나 있었기에 언젠가는 기어코 부러질 운명의 것들이었다.
연못가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제법 큰 그늘을 드리우던 33년생 낙우송이 못쓰게 넘어져 버렸다.
사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나무다.
소위 쌍간(雙幹)의 나무형태(수형)로 어느덧 10m 높이로 자랐던 것인데, 주간(主幹)이 둘인 것은 성장하면 반드시 양분(兩分)되게 마련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하였던 것이 '매미'를 만나 마주 갈라지며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풀썩 쓰러진 것이다.
나무든 가정이든 회사든 나라든 주장(主將)이 둘이고 그 세력이 비슷하면 언젠가는 갈라서면서 둘 다 망하게 됨을 가르치는 철학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엎어지고 부러지고 처참한 몰골이 된 셈이다.
오래전부터 예측했던 대구시의 가로수 수난이 그러하다.
범어 네거리~두산오거리 구간과 성서공단 등지의 개입갈나무 가로수들이 줄줄이 쓰러졌다고 한다.
2군사령부며 영천 3사관학교도 예외없이 이 수종들이 줄줄이 쓰러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는 소식이 들린다.
경북대학교 캠퍼스에서는 700여그루가 쓰러졌는데 대부분이 개입갈나무라 한다.
경북도청의 개입갈나무숲도 한동안 물건이라고 자랑이었다.
이번에 240여 그루나 쓰러졌다.
울창하던 뒷동산이 일순간 허허벌판으로 바뀌어 있다.
아직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하루 아침에 폐허화된 처참한 몰골들이 인간들의 아둔함으로 창출되고 있음이니, 재난치고 인재(人災) 아닌 게 거의 없는 듯하다.
대구의 자랑거리(?)라던 개입갈나무가 이래저래 천여그루 훨씬 넘게 이번 매미의 제물이 됐다.
식물강의를 하거나 언론이며 관계기관의 고급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경고(警告)를 해 주었던 것이 우이독경(牛耳讀經)으로 흘러가게만 하더니 하늘이 매미를 시켜 저토록 난폭하게 치우시는구나 싶었다.
동대구로에 죽 늘어서 심어진 것들은 지난번 글래디스와 사오마이때 혼쭐나고서 멀쩡한 것들에다 쇠발을 괴고 가지를 반 이상 솎아내었기에 큰 탈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더 높이 자라 기어코 뒤집히면서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인 처방으로 이러한 주장들이 행여 묻혀버릴까 걱정이다.
벌써 갈아치우려다 여론 때문에 그만두었던 것인데, 이제 여론조사를 다시 해서 수종을 바꾸든지 해야겠다는 관계 공무원의 말이다.
가로수를 여론으로 심고 뽑고 하다니 참 이상한 나라다.
이런 일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통해 합리적인 자료를 받아서 행정하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먼 미래를 위해 묵묵히 투자하는 고귀한 행위여야 정도(正道)일 것이다.
이렇게 녹화사업 자체에서도 인간들이 지혜롭지 못하여 성급히 이룩해 놓은 온갖 업적들이 하나 둘 붕괴되고 있다.
부처도 그러셨고 그리스도도 공자도 그러셨다.
인간의 지혜롭지 못함을 그 자체까지 죄악시까지 하면서 경고하는 글이 흔히 있다.
지혜란 지식의 축적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체험과 경륜, 그리고 신의 축복이 있어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에너지원이 된다.
그러기에 지도자들은 범인(凡人)이 짐작도 못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다수 국민이 당장에는 이해 못하더라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합리적인 녹화사업을 줄기차게 추진하여 나가야 한다.
이삼우〈포항기청산식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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