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가 나중에는 하나의 사고로 만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장일순. 김지하의 스승 정도로만 일반에 알려진 장일순은 기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도덕 정치가'이자 '초야서가(草野書家)'였으며 문인 화가였다.
KBS 1TV '인물 현대사'는 26일 밤 10시부터 '문 열고 아래로 흐르다 - 장일순' 편을 방송한다.
70년대 유신독재시절, 무위당 장일순은 민주화 운동의 오아시스였던 원주 캠프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원주에 뿌리내린 자연인으로 살아가면서 천주교 원주교구의 선구적 저항, 가톨릭농민회의 기층민중운동, 김지하 시인의 의로운 투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50년대엔 원주 대성학원을 세운 교육자였으며 60년 4.19 직후 혁신 정당이던 '사회 대중당'의 후보로 민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정치 무대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5.16 은 '중립화 평화 통일론'을 주장하던 그를 감옥에 가뒀다.
이후 장일순은 '정치 정화법'과 '사회 안전법'에 묶여 철저한 감시를 받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학순 주교, 시인 김지하, 박재일 등과 함께 강원도 일대의 농촌과 광산 지역의 농민, 노동자들을 위해 교육과 협동 조합 운동을 지도하면서 '원주 해방구'를 일궈냈다.
'걷는 동학'이라 불리던 장일순은 '밥이 곧 하늘'이고 '모든 생명은 하나'라고 주장하며 80년대 '한살림'운동을 이끌어냈다.
원주 봉산동의 그의 집은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피난처였고 장일순은 그들의 사상적 버팀목이 되었다.
말년의 그는 아호를 '일속자(一粟子)'라 했다.
스스로를 '한 알의 작은 좁쌀'로 낮춘 것이다.
'혁명은 보듬어 안는 것'이라 했던 그는 20세기 경쟁과 투쟁, 인간의 오만과 횡포를 넘어서 협동과 생명을, 그리고 '나락 한 알속의 우주'를 전했던 것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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