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 때, 문화 운운하는 사람은 먹고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거나 심지어는 산업화 사회에 부적응자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순수예술인도 대접을 못받았고, 영화나 대중예술인들은 딴따라나 광대로 싸잡아 무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거창한 구호답게 문화야말로 이 시대를 앞서 이끌어가는, 그 어떤 기간산업보다 더 부가가치 높은 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 천대 수출값과 맞먹는다는 고루한 산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눈 돌려 주위를 보면 온통 문화산업의 전성기인 것은 틀림없다.
영화감독이 문화관광부장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는, 아니 문화인들이 대접받고 있는 시대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문화와 산업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문화는 산업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먹고 살만해서 누리는,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다른 산업을 견인할 수도 있는 힘도 가졌음을 알아야 한다.
일본에는 미술관과 문학관이 매우 많다.
일년 남짓 일본에 있으면서 참 숱하게 많은 공공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을 다녔음에도 실은 동경에 있는 미술관도 다 보지 못할 정도였다.
미술관은 그들 일본인들에게는 문화적 장소이지만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요금을 지불하는 관광의 장소인 것이니 문화와 관광산업의 연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역사기술을 회화로 기록하는 민족적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은 그림그리기와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한다.
지금도 주말의 공원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 찍기를 즐기는 일본인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과 기반은 일본의 광학 기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공.정밀기술을 발전시키는 에너지원이 된 것이다.
일본의 사진기기 관련 기술이 세계 제일인 것이 단지 산업적 결과인 것이 아니라 일본민족의 문화적 동력에 기인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문화가 단순하게 관광자원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문화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됨을 알아야 한다.
바로 문화의 세기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문화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힘인 문화라는 우물을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대구에서 열린 지구촌 큰 축제인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를 전후해서 매우 다양하고 풍성하면서도 독창적인 문화행사들이 있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기념 창작오페라는 문익점 선생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목화'였으며, 김유신 장군의 삼국통일을 주제로 한 국악뮤지컬인 '강은 강을 만나 바다로 간다'도 감명깊었다.
특히 후자는 세계적인 음악장르인 오페라를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는 국악오페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 이 지역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적 기반을 든든하게 하는 발상의 창작물이어서 더욱 신선했다.
그러나 이런 공연물들이 단지 문화인들의 전유물이거나 호사가들의 잔치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많은 대중들의 호응이 바로 문화산업으로 견인하는 힘임을 알아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나 TV에서 소개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꼼꼼히 챙겨서 향유할 일이다.
문화 향유는 우리 문화를 위한 나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특히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흔치 않은 오페라하우스를 우리는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젠 문화공간 없어 문화적 낙후지라는 핑계를 할 수도 없다.
오페라하우스를 가질 만큼 성숙한 문화시민이 될 자격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초연한 이들 오페라 작품들을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대구 시민들의 문화적 역량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오페라 작품들도 수십 번의 공연을 거쳐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에도 자주 공연되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드는 일에 시민의 몫도 크다.
그리된다면 대구에서 초연된 오페라가 오페라의 원고향인 유럽이나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그 유명한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될 날도 분명히 올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세기를 살아갈 우리의 문화적 에너지이다.
이상규(경북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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