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틀리게 내린 비

미국의 한 지방 기상대에 깐깐한 예보관이 있었다.

내일은 쾌청하다는 예보를 하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잇따른 항의에 이 예보관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밤의 천기도로는 비는 절대로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린 비는 틀리게 내렸다". 이 예보관은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우겼다.

좀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틀리게 내린 비는 배심재판에까지 제소됐는데 철학교수들이 판단할 문제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 후 틀리게 내린 비하면 소신을 갖고 현실에 굴하지 않는 고집과 기개를 뜻하게 됐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다.

옛날 서당 훈장은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편지도 써주고 제삿날 축문도 써주어야 하는 문화센터의 역할을 했다.

어느 날 훈장은 한 가장의 부탁을 받고 어머니 제사에 쓸 축문을 써주었다

한데 엎드려 읽다 보니 장모 제사에 읽는 축문을 잘못 써준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 써 달라는 얘기를 들은 훈장은 횡 돌아앉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 장모가 틀리게 죽었지 내가 틀릴 리가 있나".

훈장의 부당한 고집을 꼬집는 우스개 이야기이긴 하지만 자신의 직책에 그만한 고집과 소신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남의 눈치나 여론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슬기로운 판단과 굳은 의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희생을 무릅쓰고 바르게 일하는 사람이 반드시 많아야만 한다.

권세, 금력, 폭력 등 현실에 굴하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깐깐하게 버티어내는 기개를 가진 '틀리게 내린 비'가 아쉬운 요즘이다.

칠곡군 왜관중앙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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