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고에도 없는 '재신임'발언

노무현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하다가 즉석에서 재신임을 제안하게 된 배경을 담담하게 밝히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이 연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정혼란 논란이 가열되고 '정국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정서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설명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받겠다고 나선 것은 무모하고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최도술 전 비서관의 비리혐의가 보도된 것을 보고 눈앞이 깜깜했다"며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그 허물이 드러나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볼까, 무슨 낯으로 국무위원들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참담했다"며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눈감고 생각해 봤을 때 안희정, 노건평, 이기명, 장수천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자랑할 일이 아니지만 큰 부끄럼이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 문제(최도술씨)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고 할 정도의 비리혐의가 무엇인지, 노 대통령이 알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앞으로 논란이 일 수도 있는 민감한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양심에 자신감이 없는 문제로 끊임없는 논란과 보도가 이어질텐데, 어떻게 국정에 전념할 수 있고 APEC에서 세계 정상과 어떻게 할 것인지 수사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면서 "이것이 국정의 혼란, 마비라고 생각했으며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지지기반과 환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역정서도 좋지 않고 언론사정도 좋지 않고 (나는)호남인도 영남인도 아니며 그 경계위에서 양쪽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는 앞으로 4년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행이 있더라고 우리 정치를 바꾸는 조그만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제 할 몫을 어느 정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헌법상의 국민투표 요건에 대해선) "국가안위에 대한 개념을 폭넓게 해석하면 될 것"이라며 "과거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중간평가 재신임을 요구한 바 있고 저의 재신임 제안 이후 즉시 재신임받아야 한다고 했으므로 합의가 쉽게 이뤄지리라 본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한 "정책을 결부시키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안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있는 그대로 정책과 결부하지 않고 재신임 묻는 게 좋으며 혹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아울러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요구가 있으면 별개로 묶어 진행하더라도 재신임을 묻는 게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송두율씨 사건과 관련, "정부가 송두율 교수문제를 기획하거나 초청한 논란에 대해 밝히겠다"며 "적어도 청와대는 사전에 기획한 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송 교수에 대한 수사와 처벌의 문제는 분단시대, 극단적인 대결구도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으나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면서 "처벌을 마다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불신의 시대가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포용의 시대이므로 우리 사회의 넓은 폭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어느 한쪽의 극단적인 견해가 (우리 사회를)지배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며 "처벌하더라도 이러한 양면에 대한 성찰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