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3명이 지난달 달아났다는 대구시내 한 제조업체 사장 ㄱ씨는 공장으로 찾아가겠다는 제의에 "절대 안된다"는 첫마디를 꺼냈다. 안 그래도 기업인들 보는 시각이 안좋은데 자신의 실명을 달고 중소기업 인력실태에 대한 주장을 펴다가는 '반인권.반정부 기업인'으로 찍혀 큰일난다는 것.
겨우 설득, 공장 대신 찻집에서 만난 ㄱ씨는 연간 100억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공장을 최근 내놨다고 했다. 일할 사람이 절대 부족, 공장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적용 법규를 현행 산업연수생제에서 고용허가제로 바꾼다고 해서 지난달에 월급을 1인당 5만3천원씩 올려줬습니다. 장사가 잘 돼 올려준 것이 아니라 고용허가제가 되면 내국인과 동일한 임금체계를 갖춰야된다고 해서 인상시켜준 겁니다"
그는 국내 체류기한이 다된 외국인 근로자 3명의 경우,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고 공항으로 데려다주다 놓쳤다고 했다. 때문에 달아난 외국인 근로자 숫자만큼 외국인 근로자 채용 쿼터도 잃어버렸다는 것.
"내국인 근로자는 사정을 해도 안오는 마당에 그나마 생산현장을 지키는 외국인 근로자는 정부가 나서서 내보내려하고, 외국인 근로자는 이를 비웃듯 출국시한이 오면 도망쳐버립니다. 중간에 끼어 속을 태우는 것은 중소기업주 뿐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 운영이 되겠습니까?"
그는 숙련공이 없어 애를 태우는 중소기업에 외국인들은 훌륭한 숙련공이 될 수 있지만 정부가 툭하면 제도를 바꾸고 '불법 체류 단속'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일이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날 만난 경북의 한 업체 사장 ㄴ씨도 체류시한이 다 된 외국인 근로자 3명이 두달전 도망갔다고 했다. 고용허가제 시행에 맞춰 정부가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을 한다고 하자 다른 지역의 공장으로 떠나버린 것.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도망가면 도망간 숫자만큼 추가 배정을 받을 수 없어 두달전 내국인 구인공고를 냈지만 '전화소리'는 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근로자는 없고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구인공고를 봤다며 전화를 해옵니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한없이 우울해집니다. 불법체류자를 써야하는지 고민도 되고, 안 쓰자니 일손이 모자라 공장을 못돌리고…. 제도를 만드는 정부가 과연 현장 사정을 아는지, 법을 고치고 나서 제대로된 시행을 자신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구 근교의 한 섬유업체 사장 ㄷ씨는 '도망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경험은 중소기업 업주 대다수의 공통사항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의 버팀목이 되어 버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정책을 정부가 이제 현장에 맞도록 정비해야합니다. 제도 바꾼 뒤 불법 체류 단속한다고 해서 이 땅을 떠날 외국인 근로자가 많지 않을 뿐더러 중소기업을 생각하는 정책이 되어야한다는 거죠. 섬유업체에서 일한 외국인 근로자는 2년을 넘기면 숙련공이 되는데 이 사람들이 숙련공 되자마자 제도상 제약때문에 떠나야합니다"
그는 내국인 근로자의 취업 기회때문에 외국인 근로자의 장기체류를 막아야한다는 정부 주장은 잘못됐다고 했다. 자신의 회사 경우, 지난해부터 구인공고를 아예 내지 않을만큼 내국인 구인이 불가능해졌다는 것.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일률적 법 적용보다 개인 점수제를 도입, 한 곳에 오래동안 성실히 근무하면 장기 체류 혜택을 줘야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기업의 생산을 돕는 정책이 만들어져야한다는 얘기죠. 기업을 돕는 제도가 없으면 기업은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 회사도 최근 중국 사무실을 개소, 중국으로의 생산 설비 완전 이전까지 검토중입니다" ㄷ씨는 '사람'때문에 기업할 맛이 안난다고 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까지 15차례 가량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전국 규모의 일제 불법 체류 단속을 해왔으나 효과는 미미했다"며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다음달 20일부터 불법 체류 단속이 시작되면 장기체류한 외국인 숙련 기능공들의 이탈로 인한 중소기업의 조업 손실이 불가피한 반면, 실제 출국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용허가제 시행에 따라 체류기간 4년 미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달말까지 취업확인서를 발급받고 4년 이상 체류자는 15일까지 출국해야하지만 대구지역의 경우, 취업확인 발급 대상자 6천600여명 가운데 4천400명만이 확인서를 받았고 출국 대상자대다수는 출국을 하지 않고 있다고 관계 기관들은 전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사진: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정부의 불법 체류 단속 방침이 나오자 고질적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 또다시 애를 태우고 있다. 사진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취업확인서 발급이 이뤄지고 있는 대구고용안정센터.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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