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폭력의 당위성

뉴스에서 전국농민대회와 부안군민의 시위현장을 보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곱 살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싸워요? 큰일 났어요". 순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분명 그들 모두 시위의 명분은 있었다.

그래서 난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 수준에서 농민아저씨와 부안군민이 왜 시위를 하는지 설명했다.

아들이 그들 시위의 정당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설령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 애가 크면 이해하게 될 것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답답했다.

뉴스에서 보도된 시위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곳곳에 난무하는 폭력의 장면들은 그들 시위가 아무리 명분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폭력의 당위성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아들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 "엄마 그래도 싸우는 것은 나쁜 일이지~"에 할 말이 없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다' '말로 해서는 안돼' '맞으면 너도 한대 쳐' 흔히 일상에서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사용한 폭력들이 현실화되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실제 오늘 날의 농업위기나 환경위기 등 우리 삶 전체를 흔드는 기가 막히는 사건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수많은 기득권에 부딪혀 좌절할 때가 있고 그리고 그때는 누구나 한번 쯤 폭력의 당위성을 빌려 분노를 폭발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폭력으로 관철된 의사(意思)는 시행 중 많은 잡음과 불협화음으로 또 다른 피해를 만들어 새로운 억울한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한번 시작된 폭력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사슬이 되어 원치 않는 삶으로 끌려 갈 것이다.

그것이 폭력의 이중성이다.

폭력에 정당성이나 당위성은 없다.

만약 그런 당위성이 인정된다면 영역싸움을 위해 패싸움을 일으키는 폭력집단도 정당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자식들인 젊은 전투경찰들과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 누나, 동생뻘인 우리가 서로 피 흘리고, 화염병을 던지며, 몽둥이질 하지 않는 평화의 사회를 만들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박모라 상주대 교수. 식품영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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