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자령 트레킹

선자령(仙子嶺). 말 그대로 능선에서 뻗어내린 계곡의 경관이 좋아 하늘의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을 즐기며 놀았다는 유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겨울 선자령은 앙상한 계곡과 사방으로 탁 트인 황량함만이 넘친다.

그래도 선자령은 겨울을 동경하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832m의 대관령고개에서 오르는 완만한 산행도 매력이지만 대관령 삼양목장의 더 넓은 목초지에 눈이라도 쌓이면 말 그대로 '설국'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선자령을 가는 산악회 팀들과 대관령에 도착했다. 휴게소 위쪽에서부터 대관령 기상대와 임업관리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강원도에 얼마전 대설주의보가 내려질만큼 많은 눈이 내렸는데 요 며칠 따뜻했다고 눈이 다 녹았다. 태양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한다. 응달에만 잔설이 남아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이다. 영화속 설국을 기대하고 왔던 일행들의 불평이 막 쏟아진다. 하지만 여기까지 몇시간을 달려 온 길, 눈이 없어도 또 다른 매력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초입에 신라 승려 범일국사를 모신 국사성황당이 나온다. KT중계소를 거쳐 항공무선표지소 앞까지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다. 무선표지소 옆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선자령까지 2.8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2001년 새천년을 기념해 강원도민들이 심은 1천그루의 주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바람과 눈이 가장 많다는 이곳에서 잘 견딜 수 있도록 삼각형의 바람막이 속에서 자라는 어린 주목이 무성한 가지를 뻗으면 멋진 숲길이 될 것 같다. 40여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바람이 많아, 새조차 쉬어갈 수 없다고 해 역설적으로 이름 붙여진 새봉에 도착한다. 시야가 탁 트인다. 잔설을 이고 있는 산들이 온 사방을 둘러 쌓다. 바람이 제법 분다.

새봉에서 한 숨 돌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산길에 선 나무들은 하나같이 왼편 가지가 없다. 동쪽으로만 가지가 자라고 바람이 세게 부는 쪽으로는 가지를 뻗을 엄두도 못내고 있다. 언덕을 넘어 북서편자락에는 눈이 제법 남아 있다. 키작은 산죽밭에 오롯이 난 오솔길이 눈으로 덮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오르내리기를 몇 번하니 꼭대기에 못미쳐 고사목 한그루가 지키는 언덕이 보인다. 더 넓은 목초지다. 등산객들이 새파란 하늘과 맞닿은 언덕의 경계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속 장면같다. 영화 실미도의 684 북파부대원들이 훈련하던 눈 덮힌 그 언덕을 연상케 한다. 언덕에 오르니 발 밑으로 펼쳐진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여인의 가슴처럼 옹곳봉곳 솟은 목초지 구릉이 파노라마 처럼 이어지고 언덕마다 한두그루의 키작은 소나무가 서 있다.

어릴적 달력에서 보던 풍광이다. 언덕위에는 앞서간 등산객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5분거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왔던 사람들이 정상을 다녀와 점심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정상에 오르니 동쪽 강릉을 제외한 서,남,북 삼면은 온통 목초지다. 맑은 날에는 아득히 동해바다 수평선이 눈에 잡힌다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도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왼편 아래에는 마치 운동장을 연상케하는 평평한 목초지가 보이고 북쪽에는 3기의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올해까지 총 50여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다 들어서면 선자령의 새로운 명물로 탄생할 것 같다. 다시 언덕으로 내려와 도시락을 먹는다.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찬바람에 몸이 떨린다. 같이 온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눈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눈을 뭉쳐 선제공격을 하니 이내 한 팀이 돼 눈싸움을 벌인다. 동심으로 돌아가 넓디넓은 목초지를 몇바퀴 돌고 나니 얼었던 몸이 풀린다.

하산길은 정상 반대편으로 난 초막골로 정했다. 언덕을 넘자 가파른 내리막이다. 길이 얼어 제법 미끄럽다. 완만했던 등산에 해이해졌던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산을 하나 넘자 바위 너덜길이 시작된다. 30~40도의 급경사 돌길을 내려오기가 여간 힘들지 않는다. 눈이 쌓였더라면 고생을 해도 한참을 해야 되는 길이다. 일행 중 한명이 하산길에 다리를 삐었다.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길이 위험천만인데 다행히 한의사를 만나 응급 처치를 받고 지팡이에 의지해 산길을 내려왔다.

너덜길이 끝나고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뚫린 영동고속도로가 보이고 솔숲이 나타난다. 곧게 뻗은 소나무숲길도 경사가 급하기는 마찬가지. 1시간 30분 가량되는 하산길은 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솔숲길밑에는 또 다시 너덜길이다. 너덜길 끝에 낙엽이 침대처럼 쌓여 있는 평지가 이어지고 계곡이 나온다. 얼어붙은 계곡에는 앞서간 등산객들이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난 흔적이 있고 비닐 포대가 뒷사람을 위해 놓여져 있다.

계곡을 따라 난 완만한 길을 내려오면 대관령 구도로가 나온다. 도로에 20여대의 관광버스가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1천여명의 등산객들이 오늘 이 선자령에 왔나보다. 도로 양편이 다 관광버스다.

취재수첩

◇가는길 : 중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 횡성 → 대관령 IC → 구 대관령 휴게소

◇주변관광지 : 대관령 정상 1km아래 반정에서 출발하는 대관령 옛길도 겨울 트레킹의 일번지다. 반정에는 '대관령 옛길'이라는 비석이 있으며 길 끝에는 지난 93년에 문을 연 대관령박물관이 있다. 건축대상을 3번이나 받은 개인박물관으로 연자방아, 돌대야, 구리거울, 토우 등 예사람들의 질박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033)641-9801.

◇먹을거리 : 대관령에는 크고 작은 황태덕장이 20여곳이나 있다. 보통의 북어와는 달리 육질이 더덕처럼 쫀득하다고 해 '더덕북어'라고 불린다.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횡계의 황태회관(033-335-5795)등이 유명하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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