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푸름해지고 있다. 아직은 소맷자락에 남은 꽃샘추위가 혹 맵기도 하지만 싫지는 않다.
어제는 경칩. 개구리 소식 전해 들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봄은 이미 우리들에게 닿았다.
입학식으로 벅적대는 대학 캠퍼스. 먼지 좀 풀풀거려도 뭐 어때. 세상은 우리들 세상. 그러나 그 얼굴들. 해방감으로 차 있는 새내기의 얼굴들에서 두 가지를 느낀다.
어디로부터의 해방일까. 하나는 정형화, 간편화, 암기화, 그리고 밤샘으로부터의 해방. 다른 하나는 밋밋하고 단지 떼밀려 여기까지 왔을 뿐인 무감각. 어느 것이든 이제 대학은 그들에게 새로울 뿐이다. 늘 봄이 새로운 봄이듯이.
문제는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까 하는 점이다. 방법은 여러 갈래다. 운동, 영화, 연극, 춤과 노래, 여기다 인터넷, 동아리도 유용할 것이고 여행이나 박물관 또는 미술관 순례도 당연히 욕심나는 장소다.
책읽기는 어떨까. 만만찮은 권유다. 눈뜨면 사방이 정보의 바다, 여기다 책까지 읽으라면 역정이 날 일. 그렇지만 대학 입학은 역정을 용기 있게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경칩에 잠을 깬 개구리는 다음 순간 어디로 뛸까. 그건 순전히 개구리 마음이다. 개구리 마음이듯이 마음 먹기에 달린 일들이 우리들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물론 책 읽기도 그렇다.
한번 용기를 내 '오리엔탈리즘'을 읽어보면 어떨까. 저자는 에드워드 W 사이드. 영국이 위임통치하던 시절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저자는 가족과 함께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은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옮겼다.
박 교수는 지난해 모방송국의 해외취재에 동행해 담당PD의 비리를 고발하고 자신도 비판한 글을 본지 등에 발표해 방송국을 혼쭐나게 할 만큼 철저한 비판의식을 지닌 학자다.
웬만해서는 번역서들이 아주 간략하게 한두 쪽, 길어야 서너쪽 분량의 번역의 변을 싣는 게 상례다시피된 것이 우리 출판계의 습성이지만 이 책은 박 교수가 60여 쪽이 넘게 '옮기면서'라는 글을 더한 것만 봐도 얼마나 원문을 옮기는데 노력과 열정이 녹아 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물론 원저도 방대하다. 쉽사리 이해가 안되는 분야도 많다. 특히 젊은층에게는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전의 끝에 맛보는 이해의 통쾌함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중동이 요즘 우리들의 중요한 화두중 하나가 아닌가. 아랍인들의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은 뿌리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위대한 문명이면서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피해의식은 억울하다.
그것은 여전히 미국의 일방적인 국제정세의 주도에도 큰 동인이 있다. 그게 어디 아랍뿐일까. 우리는 어떤가.
박 교수는 '옮기면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원서의 제목인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는 적절한 용어가 없어 원어 그대로 역서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굳이 동양주의나 동양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학문을 동.서양의 것으로 나누어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밖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만해도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잠깐 애용되긴 했지만 지난 45년 이후 동양침략의 음모였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서 재빨리 인도학이나 중국학 등으로 말을 바꾸었다는 것을 박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우리만 그 말이 살아 유행하고 있는지 안타까워 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라는 점을 밝히고 앎과 힘, 지성과 권력의 관계를 식민지적 상황에서 인식시키고자 한 것으로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박 교수는 미국의 우산하에 있는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옮기면서'에서 주장하고 있다.
박 교수는 또 차창으로 보는 서양은 아름답다며 서양인들이 일본을 경제동물이라고 비웃은 데 이어 이제는 우리를 그렇게 비웃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4.19를 쓰레기통에 핀 장미라고 비웃는다며 우리가 정작 정신차려야 하는 일들을 독설이다시피 하면서까지 전해주고 있다.
어떻게보면 원문보다 박 교수의 '옮기면서'를 더 인용하면서 이 책을 권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같지만 그러나 박 교수의 이런 해설이 없으면 정말 새내기나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구석과 배경이 많기에 끈기와 용기를 가지고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귀울림, 즉 이명(耳鳴)은 자기만 알고 남은 알 수가 없고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어떨지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지금 우리는 이만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그 풍요가 귀울림과 코골기에 가려 자꾸 한 면만 나무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며 이 책을 읽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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