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싱글들에게서 자유와 도발의 냄새가 풍길 거라고 생각한다.
왠지 현실과는 동떨어져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 그렇기에 기혼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면서 싱글 인구도 늘고 있다.
독신 단독 가구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지만 최근에 사회적 주목을 받는 싱글들은 독신을 고집해서가 아니라 최상의 결혼을 꿈꾸기 때문에 결혼을 보류하는 경향을 보인다.
저녁식사를 빙자한 술자리에 초대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싱글들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결혼 같다고 하는데, 이들의 사정 얘기를 들어보자.
*싱글女-결혼이 두렵다
#싱글女1(최선자.28)-"남자가 없어요. 대구는 다른 곳보다 더 심한 듯한데. 사람들은 내 눈이 지독히 높아서 남자를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남자가 없어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요".
#싱글女2(박경.31)-"예전엔 눈높이 얘기가 나오면 나는 눈이 낮다고 했거든요. 눈도 낮고 큰 욕심도 없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런거라고요. 그런데 30을 넘어서면서 내 눈이 까다롭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물질적인 조건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요 주변의 결혼 생활을 관찰하다보니까 어렸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결혼생활에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그런 걸 피해야겠다 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사소한 조건들이 더 붙는거죠. 철 없을 때 결혼하는 거라는 어른들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싱글女3(김성애.31)-"어쨌든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용감한 생각은 점점 하기 힘들어요. 사랑은 결혼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이러다 영영 결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요. 결혼생활을 잘 해나갈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든 사랑할 자신이 있다는 것도 아니에요".
완벽주의 여성들일수록 결혼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위험요소들을 피해가고 싶어서다.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의 기반도 잡은 싱글女들일수록 결혼을 해서 혹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되지나 않을까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결혼생활의 성공확률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승부를 거는 일의 성공확률에 기대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간의 의혹처럼 이들이 결혼생활을 혐오하거나 하찮게 취급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결혼을 너무 '대단한' 것으로 본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싱글男-결혼은 인생의 통과의례
#싱글男1(김도균.32)-"아직 결혼 생각이 절실히 들지는 않아요. 나 같은 경우는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편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결혼을 하면 그런게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얼마 전에 겨울 등산장비 구입에 돈을 많이 썼는데, 등산 동호회의 한 형이 결혼하면 못 사니 총각 때 많이 사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런 걸 생각하면 결혼하고 감수해야 될 것들이 좀 억울해지기도 하죠. 지금의 자유로운 생활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기도 하고요. 생활 반경이 좁다보니까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느낌이 오는 상대를 만나게 되겠죠. 조바심은 안나요".
#싱글男2(우인섭.27)-"결혼을 안하거나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해요. 어떻게든 결혼은 하겠죠. 어떤 사람과 하는가 하는 건데요. 좀 심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일종의 직장구하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봉 5천만원의 직장을 꿈꾸다 2천5백만원의 직장을 구할 수도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어떤 상대와 하든 결혼은 할 것 같습니다".
#싱글男3(이용재.32)-"결혼을 왜 해야 하냐구요? 우리 사회는 결혼을 안하고 있는 사람들을 특별한 사례로 묶어요. 가족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겉돌게 되고, 직장 생활에서도 그럴테고. 더구나 결혼 안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삭막하게 살기 쉽죠. 가정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다보니 일만 열심히 하게 되니까요. 싱글의 자유로움은 어쩌면 삭막한 자유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싱글男들은 결혼을 일종의 치러야 할 인생의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듯하다.
총각 때는 아무래도 자기관리가 잘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게임 중독이나 술자리가 지나치게 많은 등 자기 제어가 안되고, 친구들이나 회사 일에 끌려 다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총각 때는 돈을 못 모으니 결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세간의 법칙률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최근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결혼을 늦추는 남성들도 많이 늘고 있다.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나서 결혼하겠다는 점에서 이들도 싱글女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에 대해 꼼꼼한 자격심사 기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은 '적당한 때'가 언제인지와 당위의 강도 차이일 뿐 동서고금을 막론한 일반법칙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에서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적 압박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혼례를 통해서 비로소 부모로부터 경제적 심리적 독립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과 친지로부터 받는 밀착 압박이 더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연애나 일을 통해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생활 전반이 개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젊은 세대들이 남들의 이목이나 가족 관계보다 자신의 만족도를 더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개인부담이 크고 가족 경제와 노후에 대한 사회적 뒷받침이 없다는 현실은 결혼을 두렵게 만들고 만다.
한 싱글男이 던진 말처럼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맞는 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신게 되면서 비로소 한 짝의 짚신으로 탄생한다는 뜻일지 모른다.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할 용기, 또한 난관을 함께 극복할 의지가 있을 때에야 결혼할 용기가 생길 듯싶다.
박경(대구사회연구소 연구원) parkk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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