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출 2백억불 금자탑 구미-(7)노.사 화합의 기운

춘투(春鬪)! 해마다 이맘때면 산업현장에는 긴장감이 돈다.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회사 사이의 곧추세운 대립각이 산업현장을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 올 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 왔지만 비정규직 문제와 주5일제 근무 등 쟁점앞에 놓인 노사관계는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상생(相生)을 희망하는 움직임들이 수출 200억달러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노총구미지부(지부장 이규성)와 경북경영자총협회(회장 김영석)는 지난달 4일 서로 손을 맞잡고 '산업평화 선언식'을 가졌다.

이들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이자 동반자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수출 300억달러 시대를 앞당기는데 공동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구미공단의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는 선언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공단내 현장에는 8만여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경총과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지도부들은 이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유럽 선진 노사문화 배우기에 나섰다.

이들의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일단 의견을 모은 것이다.

민주노총 구미지역협의회 김성현 의장은 "수출 200억달러 달성에 비해 하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며 "기업들도 주부 등 비정규직으로 생산현장을 채우고 있어 산업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의장은 구미공단 노동자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와 주 5일제 근무, 문화복지시설 확충 등 노동환경 전체에 대한 획기적 개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구미시도 노사분규 없는 구미공단을 만들기 위해 상생의 노사관계 정립에 노력하고 있다.

산업평화 정착을 위해 전국 최초로 노조간부와 기업체.노무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6개월 과정의 노동경영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 수년간 총파업으로 서로가 대립했던 오리온전기 노사의 법정관리 이후 변화된 새로운 문화는 구미산업단지 전체에 불고 있는 '산업평화'의 모델이 되고 있다.

'세계경영'이라는 기치아래 무리한 해외투자, 일방적 구조조정 강요로 불거진 총파업 사태 등으로 급기야 부도와 법정관리로 한 때 파산으로까지 치달았던 구미 국가산업단지내 오리온전기(주).

회사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선 노조의 총파업사태는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되풀이됐다.

그 과정에서 숱한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고 집행부 구속 등 노조와 경영자간의 한치 양보없는 대립이 산업현장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급기야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부도와 함께 7월부터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갔다.

끝간데 없는 대립이 서로에게 생채기만을 남긴 채 수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었고 경영주는 자신의 분신을 잃어버린 꼴이 됐다.

15일 찾아간 법정관리 8개월째인 오리온전기(주) 산업현장에는 △품질향상 △생산성 배가 △불량수율 줄이기 등 노동조합 현장간부들이 중심이 된 '회사살리기 특위활동'으로 대립과 갈등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국금속노조 오리온전기지회 권성기(43) 지회장은 "지금은 회사를 살리고 경영정상화를 이루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새로운 자본이 유입돼 시설에 투자되고 고용이 창출돼 지금의 고용안정이 보장된다면 노동조합이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밝히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현장 작업반장 등을 중심으로 간부 간담회를 마련해 앞서 언급했던 특위활동 실천을 결의하고 앞장서 회사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파업 등으로 악화된 기업이미지 회복과 사라진 해외 판매망 복구를 위해 이경득 관리인과 류순열 노조 수석부지회장은 중국 쓰촨(四川)성 창홍공장과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사 등 해외법인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이경득(62.산업은행이사).김용대(45.변호사) 관리인과 노조측은 부도 후 2개의 모니터용브라운관(CDT) 생산라인을 폐지하는 등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9차례에 걸친 노.사협의회를 통해 530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양측은 회사의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무너진 영업활성화를 위해 거래선을 노사동반 방문하는 등 협력적으로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투쟁과 대립이 아닌 이해와 대화를 통해 산업평화를 정착해 나간다는 상생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

김용대 관리인은 "그동안 파업과 부당해고 등 대립각을 세웠던 노사간 관행을 오리온전기 노조와 관리단이 대화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새로운 노사문화의 대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노사가 서로 동반자로 인정하고 상생(相生)하는 관계를 통해 산업평화가 정착될 수 있고 그것이 기업이미지와 경영 극대화를 가져오는 최고 가치라는 것.

이같은 양측의 회사살리기 노력은 조금씩 경영흑자를 기록하고 관리단의 CPT(TV용브라운관)라인의 해외이전과 PDP.유기EL라인의 신규증설 등을 골자로 한 회사정리계획안에 대한 채권단과 법원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고 다음달 중순쯤 열릴 2, 3차 관계인집회를 통해 인가결정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노사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회생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중국과 미국LA 등의 해외자본들이 기업매각(M&A)을 타진해오고 있고 심지어 전자분야 진출을 노리고 있는 국내 ㅎ그룹은 기업총수와 실무진들이 잇따라 회사를 방문하는 등 신규자본 유치 희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이를 이끌어 온 김 변호사는 "회사 살림살이 전반에 대한 공개로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무너진 판매망을 새로 구축하는데 노조원들을 참여시켜 회사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산업평화의 지름길"이라 밝히면서 "조속한 기업매각으로 일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사가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와의 접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였다.

서로 가슴을 열고 소줏잔을 기울이며 회사살리기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동안 노사 양측에 쌓여있던 벽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는 김 변호사의 경험적 토로는 이 봄 산업평화와 구미공단의 생산성을 한 단계 성숙시키려는 노.사 모두가 귀 기울일 만하다.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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