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죽은 줄만 알았어", "부모님 모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29일 오후 금강산 김정숙 휴양소에서 열린 '제9차 이산가족상봉' 단체상봉에서
유창근 할아버지(75)는 지난 71년 독일에서 노무관으로 일하다 본국 귀환을 한달 앞
두고 사라졌던 동생 성근(71)씨를 만나 오열했다.
성근씨는 충남 연기군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수재로 서울
대 사회학과 입학 뒤 고시까지 합격해 노동부에서 근무하다 독일 주재관으로 나갔다.
한국에 있던 부인과 딸을 초청, 여행 중 성근씨 가족이 동베를린행 기차를 탄
것으로 알려져 자진 입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북한을 선택할 특별한
이유가 없어 납북으로 결론난 상태다.
성근씨는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형님 진정하세요. 저도 할
말이 많지만 차차 하지요"라며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형 창근씨를 달랬다.
이날 동반가족으로 창근씨와 동행한 넷째 종근씨는 "암에 걸려 죽을 뻔 했는데
형님 보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 남았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야겠다"며 형 성근
씨를 다시 만난 기쁨을 표시했다.
이날 상봉에서는 지난 87년 1월15일 납북된 '동진 27호'에 타고 있던 12명 선원
중 한 사람인 양용식(47)씨도 남측의 아버지 양태형(78) 할아버지를 만나 재회의 기
쁨을 나눴다.
용식씨는 건강하게 자란 두 손녀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한동안 "아버지"만을
되내며 말을 잇지 못해 주변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용식씨는 "아버지가 건강히 살아계셔서 너무 좋다"며 "혹시 돌아가셨을까 봐 걱
정했는데 걸어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말하자 양 할아버지는 "어디
서 살든 몸만 건강하면 된다. 통일될 때까지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양 할아버지는 또 며느리 도애숙(38)씨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곱고 예쁜 며느
리가 북쪽에 있었구나. 너도 너무나 고맙다. 애들 낳고 잘 살아줘서.."라며 생전 처
음 본 며느리의 손을 놓지 못했다.
이날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손녀 평애(13)양은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돌아가지
말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군포로인 형 종옥씨를 만나려고 했으나 작년 1월 이미 사망해 이날 상봉에서
형수 문영숙(66)씨와 조카 리철호(45)씨를 만난 이종득(66)씨는 조카에게 "네가 장
손이다"라며 건강히 살 것을 당부했다.
이산가족 남측 상봉단 중 최고령자인 김옥준(96) 할머니는 생면부지의 외손자
김진명(38)씨를 끌어안고 그리운 셋째 딸 얘기부터 묻기 시작했다.
2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는 얘기에 김 할머니는 "2년만 빨리 왔어도.."를 되뇌면
서 손자의 손을 놓지 못했다.
남측 방문단 100명은 이날 두 시간 동안의 단체상봉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환영
만찬을 갖고 해금강호텔로 이동, 반세기만의 상봉으로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상봉
첫날 밤을 보낼 예정이다.(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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