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아테네시민 TK시도민

기원전 아테네가 마라톤 벌판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뒤 국방정책에 대한 시민투표를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육군은 페르시아의 재반격에 대비하려면 육군을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해군은 해군의 증강이 더 중요하다고 서로 맞섰다.

아테네 시민들은 당시 투표방식 대로 도기(陶器) 파편에다 해군대장과 육군대장 중 자신이 반대하는 쪽 대장의 이름을 써서 투표키로 했다.

그 결과 육군증강을 주장한 육군대장이 패해 국외로 추방되고 아테네는 시민투표에 따라 해군증강에 힘을 쏟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막강해진 해군력의 아테네는 반격해온 페르시아에 대승을 거두었다.

2천500여년전의 그 도기파편 투표는 시민투표의 총의(總意)가 잘 맞아떨어진 모범적인 투표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유권자가 깨어있는 현민정치(賢民政治)가 될 경우 민주적 제도에 의해 국익과 민중의 자유가 꽃필 수 있음을 보여준 예다.

그러나 깨어있는 시민에 의해 민주정(民主政)을 이룩했던 그 아테네도 데마고그스(웅변술 좋은 선동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우둔한 민중들이 어리석게 속아 투표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의해 스파르타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자유는 잘못된 투표로 인하여 단한발의 총성이 울리지 않고도 잃어버릴 수 있게 된다'는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유권자의 그릇된 투표는 자유와 인권, 심지어 국가까지도 잃게한다는 진리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 맞아떨어진 경우다.

사흘후면 우리도 투표를 한다.

해군대장을 밀었던 아테네 시민처럼 깨어있는 투표를 할 것인지 현대판 '데마고그스'들의 공약(空約)이나 이벤트성 쇼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중우(衆愚) 정치의 공범자로 전락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지난 50여년간 우리가 했던 수많은 투표기록의 낡은 필름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페르시아를 물리칠 때의 아테네 시민 형(型)이었는지 스파르타에게 멸망당할 때의 아테네 시민형이었는지 자화상이 보인다.

고무신 한짝, 막걸리 한잔, 비누 몇장에 표를 팔았던 업보는 군사정권을 자초했고 동서로 갈라서서 몰표나 찍게했던 9단짜리 '데마고그스'들의 망국적 지역주의에 속아 표몰아주며 동조했던 어리석은 업보는 IMF와 아직도 못다그친 후폭풍의 경제난 속에서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불과 1년전 선거로 뽑은 지도자는 직무정지로 은둔중에 계시고 4년전에 뽑은 거대야당의 의원들은 탄핵시비에 휘말려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깨어있는 투표를 했었던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깨어있는 유권자가 되자'고 떠드는 캠페인 속에서도 전국 유권자들 술안주거리에 올라있는 화두의 하나는 '대구.경북에서 이번에도 실속 못챙기더라도 한쪽 당(黨) 후보들이 싹쓸이 할까'라는 해묵은 의구심이다.

동네 바깥 입방아뿐 아니라 집안 울타리안에서도 이런저런 관점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는 지역 경제, 지역 개발같은 실속을 챙길때도 됐다"거나 "'못먹어도 고!'식으로 가다간 욱~하는 심기는 풀릴지 몰라도 판돈은 손해난다"는 푸념들이 그런 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는 1조2천억원이 쏟아부어졌는데 세계대회인 대구 유니버시아드에는 고작 3천여억원만 내려온 찬밥신세를 두고 '한쪽만 팍팍 찍어주더니 꿩도 알도 다 뺏기고 메추리 알이나 주워먹고 앉아있는 꼴이 아니었느냐'는 비아냥도 그런 반론의 분출이다.

하기야 국가균형발전의 원론으로 볼때 국책사업 예산집행이 합리적인 완급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국회의원 뽑아준 숫자에 비례해서 괘씸죄 집행하듯 국민세금을 갖고 놀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다.

여당쪽을 적절히 안배해 찍어줘야만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예산집행 인심이 후해질 거라는 논리도 보편적 상식으로 보면 말이 안되는 얘기란 비판도 없지않다.

반대로 '정치 현실이란게 어디 합리나 명분으로만 따져지는 일이냐. 그러니 이제 YS.DJ.노정권까지 내리 십수년 황소고집으로 뻗대다가 지역 살림살이 거덜내고 거적때기 신세되기전에 잇속이나 차리자'는 현실옹호론도 적잖이 나오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건전한 정당정치는 정론의 다양성과 세력의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쪽이든 지나친 정치그룹의 편중이 정파적 이익우선으로 작용되기 시작하면 조화보다는 분열과 마찰만 더 커진다.

이제 지역몰이 투표가 국가역량통합에 무슨 도움을 줄것인가도 염두에 둔 투표야말로 아테네 시민 형(型)의 깨어있는 투표일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그 판단은 오로지 TK 시도민의 몫이다.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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