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에서 내린 후 예천읍을 거쳐 북(北)쪽 방향으로 승용차로 15분정도 가다보면 정감록 십승지 가운데 하나인 용문면 금당(金堂)실에 도착한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을 지나 매봉산 해발 520m에 도착하면 신라 경문왕 10년(870년) 이 고장 출신인 두운대사(杜雲大師)가 창건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인 천년고찰 용문사가 나타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천왕상,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일주문, 국내 유일의 윤장대를 간직한 용문사는 계곡사이로 들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염불 소리, 신도들의 발길로 시끌벅적하다.
국내 900여 사찰 중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윤장대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때 건립 천년의 역사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자엄스님이 조성했으며 인도의 고승 구담이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용이 나타난 용문사에 대장전을 짓고 높이 4.2m, 둘레 3.37m의 팔각정 모양의 윤장대를 설치했다.
중앙에 찰주를 세우고 하대와 몸체, 옥개부 세부분을 올렸으며 아랫부분에 손잡이를 달아 돌리면서 염송(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하면서 불경을 외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팽이처럼 생긴 하대는 연꽃을 조각한 판재로 장식하고 몸체는 난간이 있고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꽃창살과 살창을 대었으며 옥개부는 짧은 기둥을 달고 연꽃 봉오리로 장식해 놓았다.
#누구든 소원성취 영험함
사찰에 처음 윤장대를 설치한 것은 중국 양나라때 일로 전해지고 있다.
불도를 믿으려 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거나 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윤장대를 돌리면 누구든지 소원성취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에 아들없는 사람, 장가.시집 못간 사람,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돌려보고 싶어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난 1984년 용문사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사찰 대부분이 전소됐을 때도 국내 유일의 윤장대를 보관한 대장전 건물은 불에 타지않고 살아 남았다.
그 이유는 대장전 법당 기둥 위에 조각된 용, 붕어, 연꽃, 귀면 등이 물(水)을 상징하는 부적(符籍)역할을 해 화마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사찰 측의 해석이다.
대장전(大藏殿.보물 제145호)은 고려 명종 3년에 건립된 건물로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輪藏臺.보물 제684호)와 대추나무로 만든 목불좌상 및 목각탱(木佛坐像.木刻幀.보물 제989호)이 보존되어 있는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계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균형미가 뛰어난 목조건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윤장대가 훼손상태가 심하자 문화재당국이 지난 1980년 문화재로 지정한 뒤 훼손을 우려한 사찰측에서 일반인들의 공개를 꺼려 불자들이 안타까워했다.
#일년에 두차례 일반 공개
지난 1998년 청안(淸岸.68) 주지가 부임해 오면서 대대적인 불사에 나서 지난해 10월 보수를 마친 윤장대가 일반인과 신도들에게 첫 공개됐다.
사찰 측은 "신도들의 복덕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3월3일과 9월9일 두차례 신도들과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주지 청안스님은 "경전을 보관하는 윤장대는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침을 전해왔다"며 "윤장대는 한번 돌리면 1만번의 다라니경을 읽은 공덕을 쌓게 되며 자기 업장소멸과 자신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고 복을 빌고 소원을 빌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영험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용문사는 현재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그 옛날 번성했던 용문사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자치단체와 사찰 측의 노력이다.
예천.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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