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유산은 천덕꾸러기?

'문화재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 각국마다 나름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문화재보호 운동을 거국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재 주변 지역주민들은 재산권 침해 때문에 극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귀중한 문화유산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 위치한 화산서당(경북도문화재 제22호. 1989년 5월29일 지정). 화산서당은 주변 지역의 개발 추세에 밀리고, 건물이 너무 낡아 붕괴 위험에 처했다는 이유로 10년 전부터 이전건립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아직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전 건립 대상지마다 주변의 개발제한 조치와 땅값 하락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 급기야 문화재 이전을 추진하는 측과 동네 주민들간에 법정 분쟁까지 치닫는 등 심각한 갈등 상황을 빚고 있다.

◇문화재 이전건립 대상지역 주민반응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는 잘 압니다.

그러나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정한 법이 너무 엄격하고 규제가 극심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문화재가 들어온다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근 칠곡군 석적면 반계리 주민들은 칠곡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석적면 중리에 있는 인동 장씨 문중 소유인 화산서당이 반계리 198번지 일대로 이전 건립을 추진하자 결사 반대하는 것.

주민들은 "평생을 가꾸어온 삶의 터전이 문화재로 인해 규제를 받는다면 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주변지역의 토지가격은 폭락하고 모든 개발에 규제를 받게된다는 것.

반계리 주민들이 이전 건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당초 화산서당은 현재 위치의 부근인 성곡리로 이전을 결정했다가 그곳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반계리로 방향을 바꿨기 때문.

당시 성곡리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이전 예정지였던 성곡리 산 100-8번지 일대 임야에는 산허리를 깎아내 3단계로 조성한 토목공사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공사장 입구엔 99년 6월 대구지방법원 명의의 '공사방해 가처분신청' 고시문이 설치돼 있어 당시 주민들의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보여준다.

◇붕괴직전의 화산서당

정묘호란때 의병장 장경우(1581~1656년) 선생은 진사에 입격한 후 영릉참봉에 제수됐으나 이를 거절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 칠곡군 성곡리 화산 아래 서당을 건립하여 후학에 전념했다.

이후 화산서당은 1840년 현 위치인 석적면 중리 111번지로 이전했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농촌이던 이곳은 최근 수년 사이 토지구획정리 등 지역개발 여파로 신도심지로 돌변했다.

특히 주변지역이 급격히 개발되면서 화산서당은 도심 한복판에 파묻혔다.

10여년 전부터 추진해온 이전사업이 늦어지면서 화려한 옛 자취는 간데없고, 현재 금방 무너질듯 쇠락한 모습이 됐다.

화산서당 맞은 편에 위치한 장곡초교 학생들이 하굣길에 '귀신나오는 집'이라며 기웃거릴 정도다.

선조들이 공부하던 서당이 언제부터인가 귀신 집으로 돌변한 셈이다.

현재 화산서당의 모습은 도저히 문화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 서당 안마당과 주변지역은 온통 잡초밭으로 변했고, 담벼락도 무너져내려 폐허가 됐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본체 강당은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고(古)물건들을 수집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문짝과 각종 집기마저 모두 도난당했다.

오랫동안 서당을 지켜온 서당 옆 관리사도 폐허로 변했다.

어느 한 곳 온전한 것이 없다.

◇이전건립 추진현황

화산서당 이전 추진은 10년째 겉돌고 있다.

석적면 중리 일대가 토지구획정리사업 등으로 개발되면서 주변이 성토되자 서당은 비만 오면 침수피해를 입는다.

결국 인동 장씨 종중에서 지난 95년 12월 성곡리로의 이전 신청을 해 경북도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1월 부지조성을 하면서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법정투쟁까지 벌어졌다.

종중에서 문화재 현상변경을 신청했으나 경북도 문화재심의위원들은 "절개지의 경사로와 지질을 감안, 붕괴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건축불가 판정을 내렸다.

2002년 12월 보완하여 재접수를 했으나 경북도는 배면 및 측면의 절개지 경사가 급한데다 토질이 연약하다며 불가했고, 작년 3월 현장조사까지 했으나 결국 현상변경허가는 불가됐다.

결국 문중에서는 작년 11월 석적면 반계리 198번지 일대로 새로 이전 신청을 했고, 다시 한번 반계리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종중 대표들은 작년 11월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열고 주민설득을 한데 이어 지난 달엔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종중대표 장효희(70)씨는 "주민들의 반대로 이전이 늦어지고 있으나 꾸준히 접촉을 계속해 분위기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종중의 한 관계자는 "차라리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고 싶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문화재지정이 취소되면 반대 주민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제점

칠곡군 한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은 오히려 문화재를 망치는 법"이라고 했다.

현재 문화재 시굴과 관련된 비용 등을 공사주체에 부담시키는데다 공사기간도 무한정 늦어지기 일쑤여서 공사 도중 문화재가 발견돼도 몰래 처리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 또 국가지정 문화재 보존을 위해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에 대해 개발이 제한되는 등 재산권 침해 소지도 많다.

최근엔 이에 대한 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작년 11월 사유재산권 보호를 위해 문화재보호구역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문화재보호조례 개정안을 제출했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도지역 대부분이 도시화하는데다 문화재보호구역에 따른 사유재산권 침해시비가 많았다"며 "재산권 보호차원에서 문화재보호구역 축소를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북도 역시 작년 10월20일 '국가지정문화재 등의 현상변경 등의 행위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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