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각종 수수료 인상이 잇따르거나 수수료가 신설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터지고 있다. 그들은 왜 수수료를 인상해야 하는지, 은행의 일방적인 인상조치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알고 싶어한다.
▨최고 1천% 올려=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회계법인용 은행 조회서를 현행 5천원에서 5만원으로 무려 10배 인상하는 것을 비롯,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 보관어음수수료, 제사고신고수수료 등 10가지 종류 17개 항목의 수수료를 적게는 33%에서 많게는 1천%까지 올리기로 했다.
기업은행과 하나은행, 제일은행 등도 해외송금 수수료, 자행및 타행환 수수료, 현금인출기 이용 수수료 등을 인상하기로 해 은행 고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구은행 등 다른 지역 은행과 시중은행들도 수수료 인상을 검토중이며 이미 수수료를 인상한 은행도 있다.
▨없던 수수료까지 신설=또 지금까지 없던 수수료가 신설될 것으로 보인다.
제일은행은 질권설정수수료, 명의변경수수료, 전표·문서열람수수료 를 신설해 각각 5천원씩 받기로 하고 통장과 관련된 각종 사고신고시에도 1천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자체 원가분석을 통해 고객들이 입·출금이나 공과금 납부를 위해 창구를 이용할 때 3천311원의 비용이 든다고 분석, 전기세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 아파트관리비 등을 은행 창구에서 납부할 때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도 검토중이다.
이와 관련, 금융결제원은 자체 지로업무규약 중 '고객 수수료 부과 금지조항'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고객이 창구를 이용해 각종 공과금을 납부할 때 건당 500원 가량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뱅킹, 현금자동입출금기,공과금 무인수납기 등을 이용해 납부할 경우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다.
▨서민고객만 덤터기=문제는 수수료 인상이 물가나 인건비 상승에 따라 또 오를 가능성이 많으며 거래 금액이 많은 우수 고객은 수수료 면제 등의 우대 조치가 취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서민 고객은 수수료 부담이 갈수록 더 늘어간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90%의 수익을 올리게 해주는 20%의 고객에 대해 혜택을 더 주는 반면 10%의 수익에 그치는 80%의 고객에 대해서는 서비스 제공이 차별적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수수료 왜 올리나=은행들은 97년 외환 위기 이전에는 타행환 입금 수수료 등 극히 일부 수수료를 빼고는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예대 마진)가 고정금리로 확보돼 일정 수준으로 보장된 고정수입만으로도 은행을 경영하는 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은행들은 변동금리를 적용한 예대마진이 적어지면서 위험도가 높아져 새로운 수익원을 찾게 됐고 그 돌파구를 수수료에서 찾았다. 이 때부터 각종 은행 서비스에 수수료가 붙기 시작했고 금리가 점점 더 낮아지면서 수수료도 '현실화'라는 명목으로 더 오르게 됐다. 은행들은 그간 무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에 당연히 부과되어야 할 수수료가 붙게 된 것이라고 여기는 반면 고객들은 수수료 인상 폭이 커지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상의 근거로 인건비와 서비스 처리시간으로 대표되는 원가 부담을 내세우고 있다. 가령 고객이 당좌수표를 분실한 후 다시 발급받는 과정에서 은행 직원이 수표를 재발급하는 데 따른 수표 용지값과 인쇄비용, 인건비 대비 처리시간에 소요되는 비용 등으로 원가를 따진다.
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이 공적 성격이 강한 금융기관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은행도 수익을 창출해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수수료 현실화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수수료에 대한 은행측의 이러한 입장은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으나 고객들이 쉽게 납득할 지는 의문이다. 또 높아진 위험도를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점도 감지되는데 은행들은 바뀐 금융환경 속에서 이를 '기본'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시사하고 있어 고객들의 동의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점이다.
수수료 인상은 창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지니는데 은행 창구를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빼앗길 게 아니라 자산관리 상담 등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용하고 단순 업무는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창구에서 단순 서비스 업무량이 줄어들게 되면 인상 요인도 감소된다는 것이 은행측 설명이다.
▨원가 얼마인가=원가 개념을 고려해 수수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은행측의 입장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그 원가가 제대로 산정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흥은행의 당좌수표, 어음 분실 등에 따른 제사고신고 수수료는 1천원에서 2천원으로 오를 예정으로 원가는 2천500원으로 돼 있다. 이 원가는 창구 직원의 인건비, 용지대, 인쇄비, 업무 처리 시간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 전체 비용을 추정해 계산된 금액이다. 즉, 총비용 추정 후 실제 수수료 수입과 차이가 나면 수수료를 올리는 것이다.
우수 고객에게 수수료를 면제해 면제분 만큼 인상 요인이 생긴다면 면제받지 못하는 일반고객이 인상 요인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쉽게 납득하기 힘든 산정방식이 아닐 수 없다.
또 5천원에서 5만원으로 오르는 회계법인용 은행조회서는 원가가 규정돼 있지 않다. 결산을 맞아 법인의 감사용으로 필요한 이 서류는 60~70억원 이상 자산 규모 법인의 예금, 당좌, 외환거래 내역 등을 모두 살피며 통상 10~20개 이상 되는 통장을 일일이 확인하기 때문에 업무과정이 복잡다단하고 소요 시간도 몇 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여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수수료를 높게 매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방식은 미국, 일본은행의 사례를 참고, 컨설팅을 통해 국내 은행에 도입된 방식으로 은행별로 인건비 차이 등으로 인해 수수료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같은 수수료라도 자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해 타행으로 이체(송금)할 경우, 국민 한미은행은 10만원 이하 1천원(영업외 1천600원), 10만원 이상 1천500원(영업외 2천100원) 등을 각각 부과한다.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이체도 은행별로 가지각색이다. 국민은행은 건당 600원을, 제일은행은 300원 등을 각각 부과하고 있으며 우리 하나 조흥 신한은행 등은 500원씩을 물리고 있다.
수수료 원가 산정 방식을 표준화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은행연합회에서 금융연구원에 수수료 원가 표준화를 의뢰했으나 표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국, 일본 등도 은행별 원가 산정 방식을 택하고 있다.
조흥은행 김진태 개인고객팀 부부장은 "은행별 원가 산정방식은 객관적으로 100% 정당하다고 할 수 없어 논란의 여지를 낳고 있으나 그래도 공정성에 바탕한 최선의 산정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선의 여지는 없는가=수수료 인상에 혼란스런 고객들은 은행별로 저렴한 수수료를 찾아 이용해야 할 형편이다. 은행 거래시 수수료 체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이용하는 '수수료 테크'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영업시간외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면 비싸니 영업시간 내에 하거나 우수거래고객들을 대상으로 할인 혜택이 있으니 주거래은행을 정해 거래하는 등 '수수료 테크'를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1수수료 테크'도 해야 되겠지만 이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민단체들도 은행 수수료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있게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수수료 산정체계 자체가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제대로 따지기가 힘들 뿐 아니라 쟁점화 대상 우선순위에서 별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대해 수수료 원가 공동분석을 제안했으나 경실련은 제안 자체를 일단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은행의 부실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우려가 크다며 이를 거절했다.
은행권 내부적으로도 지금의 원가 산정방식이 최선이라면서도 객관적 타당성을 100%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즉, 개선의 여지가 있기는 하되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맹점도 있다.
이에 대해 은행 수수료도 하나의 공적인 요금으로 보아야 하며 고객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은행들의 일방적인 인상조치에 끌려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즉, 국민 대부분이 은행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은행 수수료는 하나의 공적인 요금으로 볼 필요가 있으며 은행의 부실 경영을 고객이 수수료 부담으로 떠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간과 은행, 감독기관이 참여하는 인상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 검토해보아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최주호 부장은 "금융감독기관이 카드 부실 관리에 소홀해 은행 부실을 초래한 점에서 보듯 감독과 관리 기능은 중요하다"며 "수수료 문제도 고객 피해를 줄이고 은행 경영을 관리, 감독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