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홍섭기자의 노인전문요양원 체험

우연한 기회에 경산에 있는 온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애아동 보호시설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그 후 우리 가족들은 가끔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자성을 한다.

그럴 때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 모두 꼭 가자"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나 단한번도 지키지 못했다.

맘만 먹으면 가능한 후원금 지원조차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늘 빚진 마음이다.

가슴에 남은 해묵은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25일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장미노인전문요양원을 찾았다.

사회복지법인 다송재단이 운영하는 이곳은 65세 이상의 치매.중풍을 앓고있는 노인들을 돌봐주는 전문요양원이다.

요양원 건물안은 조용하다.

당초 치매 노인들로 인해 북적거릴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어긋났다.

병원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 특유의 노인냄새(?)도 나지않는다.

홍태순(53)원장님의 간단한 설명에 이어 노인들을 모시는 방법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감이 배어 있다.

전용가운을 갈아 입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어른들의 호칭은 '어르신'이다.

원장님의 엄격한 방침에 따른 듯, 한결같이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어투로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는 조건없이 무료입원할 수 있다.

수급대상자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이.반장의 사실확인서만 있으면 실비입원이 가능하다.

오전 10시 휴식시간. 거실에서는 비교적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생활복지사들과 함께 모여 앉아 놀이를 하고 있다.

이곳엔 28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중환자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경증 치매노인 등 다양하다.

이들을 돌봐주는 생활복지사와 간호사, 생활지도원들도 21명이나 된다.

어르신 돌보기 전문요원만 10명이라 1인당 3명 정도의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우선 얼굴익히기부터 시작했다.

"할머니, 여기가 집보다 편합니까?"라고 말을 붙였다.

어눌하고 엉뚱한 내용의 대답이지만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함께 방을 둘러보던 홍 원장님은 어르신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이고 잘하셨네요" "아이고 착해라"하시면서 연신 칭찬세례다.

어린아이 다루듯 연신 포옹하고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등 진한 스킨십을 펼친다.

어색한 모습으로 쳐다보는 내가 안쓰러웠던 지 생활지도원 양지욱(32)씨와 함께 조편성을 해줬다.

어르신돌보기 총괄 관리책임자인 양씨는 올해 경북과학대 사회복지과에 진학했다.

한평생 병든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속깊은 총각이다.

양선생의 익숙한 손놀림에 비해 옆에서 돕는 손길은 서툰 짓 투성이다.

이내 다른 생활지도원들의 구경감으로 전락했다.

점심시간. 각 방으로 식사가 배달됐다.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양 할머니(78)께 영양죽을 먹여 드리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죽을 드시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린 모습이다.

틀니를 빠트려서 그렇단다.

홍태옥 선생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틀니를 깨끗이 씻어 끼워드렸다.

그제서야 음식을 맛있게 받아 드신다.

한 숟가락의 죽을 드시는데도 반쯤은 입밖으로 흘러내린다.

몇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6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도 바로 이런 모습이셨다.

"그렇게 해서는 하루종일 먹여도 죽 한그릇을 못비운다"는 지적이 떨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명옥씨가 직접 시범에 나선다.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입안 깊숙이 떠넣어드려야 제대로 삼킬 수 있다는 비법(?)을 터득했다.

건너편에 누워계시던 할머니께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흰죽이다.

증세에 따라 각각 다른 음식이 제공된다는 설명이다.

제법 과감하게 했지만 그래도 어설픈 모양이다.

그 사이 아까 먹여드리던 양할머니는 벌써 죽 한그릇을 다 비웠다.

역시 숙련이 필요한 일이다.

거실과 식당에는 혼자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어르신들이 말없이 식사중이다.

식사 후 선생님들과 어울렸다.

파트너인 양지욱씨를 비롯 유미경, 김현숙씨 등은 경북과학대에 재학중이다.

1급 생활복지사인 이유정(27)씨는 갓 결혼한 새내기 주부. 연세대 대학원에서 노인복지를 전공한 재원이다.

김은지(26)씨도 경운대 출신이다.

거실에서는 7, 8명의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넓은 도화지에 나무와 들판, 하늘을 그리는 일에 열중한다.

치매.중풍 재활요법이다.

연신 칭찬이 쏟아진다.

"정말 예쁘게 잘했네요" "이제 하늘, 들판을 색칠하고 사과를 여기에 붙여보세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구경한다.

"할머니, 지금 뭐합니까?" 넌지시 물었다.

"몰러, 뭐하는 것인지 몰러". 모두들 웃는다.

가장 인기있는 할머니는 이순경(88)할머니. 처음엔 팔을 부러뜨리는 등 말썽꾸러기였으나 가끔씩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고 천진난만해서 선생님들이 할머니 웃기기에 나선다.

얼굴이 동그랗고 체격이 자그마한 김난월(83) 할머니는 성격이 쾌활하다.

젊은 선생님들을 "오빠!"라며 잘 따른다.

윤용태(63) 할아버지는 장매희(80)할머니와 커플로 소문났다.

윤 할아버지는 장 할머니 연세가 훨씬 더 많으신 줄 모른다.

그냥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 찍은 커플사진도 있다.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 뒤에서 누군가 슬며시 옷을 당긴다.

까꿍 할머니로 소문난 한영수(68) 할머니다.

한달 전 이곳에 들어오실 때는 세살박이 정도의 지능에 불과하고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드시던 감자 샐러드를 "맛있다.

먹어봐"하며 권한다.

홍원장은 "까궁할머니가 친구들도 사귀며 너무 잘 적응하고 있다"고 기뻐했다.

목욕준비가 됐다.

온몸을 둥둥 걷어 붙였다.

이경호(57)씨. 일년전 온몸의 근육이 수축되는 루게릭병으로 이곳에 온 후 줄곧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받아놓은 목욕물이 너무 뜨겁다.

양선생은 "온몸을 긁는 증세가 심해 목욕물을 뜨겁게 해줘야 시원해한다"고 설명을 해준다.

양선생은 혼자 목욕을 시키도록 지켜보고만 있다.

목욕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니 기분좋은 표정이다.

양선생은 "가능한 한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동감이다.

힘들어하는 모습에 양선생은 "힘드냐"? "이런 일을 많이 해봤느냐?"고 물어왔다.

대답을 못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밖에서 지켜보던 선생님들은 "우리는 매일 하는 일인데…" 하는 눈치다.

이곳은 오전 6, 7시 기상과 세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한 아침체조도 하고 뉴스시청도 한다.

아침식사 후 오전엔 미술.음악.인지.회상요법의 프로그램을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오후 2시반과 3시사이는 간식시간이다.

저녁식사 후 취침 전에도 영양죽 간식이 제공된다.

밤8시와 9시에 잠자리에 든다.

간혹 밤잠을 못주무시는 어르신들도 있다.

당직 선생님들은 잠 못 들어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처럼 품안에 꼭 껴안아 잠을 재운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은 모두 어린 아이들이다.

치매와 중풍으로 집안에서 혼자 생활해 오던 어르신들은 이곳에 오면 몇달만에 놀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다.

외로움을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덕이다.

우리도 모두 예비 치매환자들일지도 모른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요양원을 떠나오는 내내 천진난만한 모습을 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투병 중에도 나를 알아보시던 어머니의 그 애틋한 눈빛이 자꾸 겹쳐진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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