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10년 넘게 떠들어 온 사법개혁이 이제 어느 정도 구체화될 조짐을 보인다.
사법개혁위원회는 법학 교육 제도 개혁안을 건의하고, 변호사나 검사 중에서 판사를 임명하여 실질적 법조일원화를 해내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배심재판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혁신적이다.
검찰과 관련해서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신설될 전망이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여당 원내대표가 세부적 의견을 내놓을 정도이니, 검찰의 수사권이나 공소권이 일부 재편되는 형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한두 가지의 개혁안도 쉽게 종착지에 도달하지는 않으리라는 느낌도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면 어느 때보다도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개혁도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대 투쟁 때문에 곳곳에서 걸린다.
세상을 바꾸자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 직역의 변화에 대해선 거세게 저항하는 이 사회 구성원의 모습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자체를 검찰 수사권의 침해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따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폐지 또는 축소 계획에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미묘한 부분에 관하여 무엇보다도 국민의 오해를 유도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곤란하다.
검찰의 권한이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고유의 것이 아니다.
검찰 수사권과 공소권의 범위는 오직 정책 결정의 결과일 뿐이다.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특별검사 임명 움직임에 대해 법무부는 위헌 주장까지 하고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헌법상 기관도 아닌 검찰의 수사권은 법률로 모조리 배제해 버려도 할 말 없다.
수사권은 경찰에 주고 검찰엔 공소권만 맡겨 놓고 있는 입법례도 있다.
사실 지금의 비대한 검찰 권한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으로 확보한 전리품이다.
갑오경장에서 시작된 우리 검찰은 광복 때까지 근대 일본 검찰 제도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일본의 국가주의적이고 치안유지 중심적인 체제의 영향으로 유럽 제도의 장점과는 거리가 먼 검찰 제도가 형성됐다.
광복과 함께 미군정청 법무국장 맷 테일러가 검찰에 보낸 훈령 제3호는 '수사권은 경찰에, 기소권은 검찰에'라는 원칙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검찰은 집요하게 자신들의 권한 유지와 확대를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했고, 그것이 1949년 검찰청법을 제정하면서 대검찰청에 중앙수사국을 두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해엔 대공사건과 사상사건 수사를 대검 중앙수사국으로 일원화했는데, 이는 체제 유지를 위한 감시와 통제를 검찰이 총괄한다는 일본의 사상검찰제도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론은 나름대로 역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참여연대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을 포함한 부패방지법안을 입법청원했다.
당시 재적 의원 과반수인 151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했다.
그후 찬성하는 국회의원 수는 3분의 2를 넘어섰지만 부패방지법 제정은 겉돌기만 했다.
그러다 2001년 돈세탁 처벌은 다른 법률로 떼어 내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대신 부패방지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사라진 것 같았던 그 논쟁이 다시 부상한 것은 2002년 신기남 의원 등 28명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법안을 제출하면서다.
이어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 총선 땐 여야 모두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총선이 끝난 뒤에는 노 대통령이 구체적 검토를 지시했고, 최근에는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신설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수사권뿐만 아니라 기소권까지 주어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8년 전 시민단체가 제안한 법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던 천 의원이었기 때문에, 그 소신이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튼 새로운 수사기관의 신설은 정책의 문제이지 결코 검찰을 흔들어 놓으려는 정치적 속셈의 발로가 아니다.
일종의 특별검사를 상설화하는 형식으로, 검찰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고 집중된 검찰의 권한을 합리적이고 부드럽게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처음부터 독립한 수사기관으로 설정했으면 체계적으로 쉬웠을 터인데, 부패방지위원회를 먼저 만들고 난 뒤 그 안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세우려 하니 애매한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차 병 직 변호사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또래女 성매매 시키고, 가혹행위한 10대들…피해자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