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아이리스(IRIS)

이 영화는 아이리스 머독(여.1919~1999)이라는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리스는 영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자였다.

세기의 뛰어난 지성으로 명성을 누리던 아이리스는 말년에 노인성 치매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녀 곁에는 그녀를 흠모하던 남편 존 베일리가 있었다.

존은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교수로, 아이리스의 학문적 열정과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정신에 매료되었다.

존과 아이리스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학문적 동지로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봐르에 비견되는 영국 최고의 지성인 커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성애적 사랑을 즐기는 아내의 사생활 때문에 존은 마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총명했던 여인 아이리스는 70대 중반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지하철역에 허겁지겁 도착해서는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무슨 일로 외출을 했는지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허탈해 한다.

영국 수상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TV 인터뷰 도중, 장황하고 모호하게 빙빙 돌려 말을 하다가 갑자기 침묵으로 빠져든다.

칫솔을 '이를 닦는 것'이라고 하며 이름을 대지 못한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의 뜻을, 생소한 듯 남편에게 묻기도 한다.

점차 말수가 없어지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남편 뒤를 어린아이처럼 졸졸 따라 다닌다.

그녀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진단 받는다.

젊은 시절 자유분방한 생활로 남편의 질투를 자극하던 매력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와 함께 하던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고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본다.

아내와 함께 했던 지난 일을 하나씩 회상하며 안타까움을 견뎌나간다.

결국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잃고 배회하는 등 노쇠한 존이 돌보기에 역부족일 정도로 악화되자 노인 요양소에 의탁한다.

아이리스는 80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서서히 발병하여 계속 진행되는 경과를 보이는 퇴행성 질환으로, 기억장애와 더불어 실어증, 실행증, 실인증, 실행 기능장애 등 여러 가지 인지기능 손상을 보인다.

65세 이상 인구의 2~4%, 80세 이상의 20%가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외에 혈관성 치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혼합형 치매 등이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의 유병률도 증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어서 병의 경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도 중요하지만 보살핌이 더욱 중요하다.

비록 따뜻한 보살핌이 손상된 인지기능 자체를 개선시키지 못하더라도, 환자의 감정 상태를 더욱 안정시켜주어 인간의 존엄성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아이리스를 끝까지 보살피는 남편을 보노라면, 서로 같은 과거를 공유해온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지고지순한 사랑가를 듣는 듯하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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