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기 이야기-(12)목소리 Ⅱ

바이올린은 앙증맞을 정도로 작지만, 콘트라베이스는 190cm나 되는 거구이다.

체구 작은 여성 연주자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 악기의 음높이는 길이에 반비례한다.

최고의 악기라는 목소리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여성의 성대는 남성 것보다 짧고, 테너나 바리톤보다는 베이스의 키가 대개 크다.

성악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뚱뚱하다.

남자 성악가들의 갈라콘서트는 헤비급 경연장같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체중은 130kg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육중한 몸 때문에 파바로티는 앞 좌석 시트를 뒤로 20cm 넓힌 특수 개조차를 타고 다닌다.

외국의 경우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소프라노가 투신 자살하는 장면에서 밑에 놓은 나무 받침대가 그녀의 체중을 못이겨 부서지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적지 않은 성악가들은 몸이 넉넉해야 소리가 풍부해진다고 믿는 것 같다.

과연 체중과 성량은 비례할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적지 않은 성악가들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흥미로운 것은 뚱뚱한 성악가는 "상관있다", 날씬한 성악가는 "근거 없다"며 상반되게 답한다는 점이다.

100kg의 거구인 베이스 오현명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성악가가 배가 안 나오면 되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성악가에게는 몸 자체가 악기"라고 밝혔다.

대구의 한 소프라노는 "성량과 체중은 분명히 관계가 있다.

나 역시도 아기를 가져 몸이 불어났을 때 소리가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날씬한 성악가 ㄱ씨는 "성량과 체중은 전연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뚱뚱해야 소리가 잘 나온다는 것은 많이 먹고 운동 안한 데 대한 변명일 뿐이라는 쓴소리도 했다.

성악가 ㅇ씨는 "살이 찌면 폐활량이 줄어 호흡이 짧아진다.

너무 뚱뚱해도 너무 말라도 좋지 않으며 성대를 쓰는데 필요한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량과 체중의 상관 관계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분명한 점은 배역에 맞는 외모와 체형이 캐스팅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뚱뚱한 성악가들의 오페라계 입지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미국의 소프라노 데보라 보잇은 90kg이나 되는 체중 때문에 주역 자리를 박탈당했다.

전설적인 프리마 돈나 마리아 칼라스는 한 때 체중이 92kg까지 나갔으나 64kg까지 감량하는데 성공, '무대의 여신'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베르디는 뚱뚱한 프리마 돈나 때문에 최악의 초연 실패를 맛봤다.

1853년 베니스에서 초연된 그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주역 소프라노 살비니 도나텔리는 폐병으로 죽어가는 가녀린 여주인공을 맡기에는 너무 육중했다.

오페라 말미에 의사가 그녀에게 폐병 말기에 있으며 앞으로 몇시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는 애절한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산더미 같은 몸집을 가진 그녀가 졸도해서 쓰러지자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라 의사 역을 한 성악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사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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