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도착(倒錯)의 시대

왕조시대의 정문(旌門)은 충신.효자.열녀를 포창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이다.

충(忠).효(孝).열(烈) 등의 한자를 새겨 포창의 종류를 표시하고, 해당자의 이름이나 직함을 새기기도 했다.

정문은 정(旌) 즉 깃발에서 유래됐다.

처음에는 금제된 일에서 멀리 하기 위한 표시로 사용됐으나, 뒤에는 임금이나 대신의 행차, 잠시간의 거류소, 국가제사 장소 등에 설치됐다.

출입금지 구역을 정하여 잡인으로 인한 혼잡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정문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고려 태조 때다.

삼국을 통일한 뒤 공신들의 사당을 짓고 사당 앞에 정문을 세워 그 공을 포창했다.

효자.열녀가 정문을 받게 된 것은 조선 세종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당시의 정문은 4개의 붉은 기둥과 백색으로 칠한 벽을 갖춘 제법 장엄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정문 받을 사람이 늘어나고 심사규정이 완화되면서 정문도 간소화되어 홍살문을 설치하는 것으로 그쳤다.

▲6.29 서해교전 전사장병 2주기 추모식이 어제 경기도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있었다.

고(故) 윤영하 소령 등 6명에 대한 추모식 참석자는 유가족과 군관계자들뿐이었다.

참수리 357호에서 불의의 포격을 받은 전우들과 역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해군 장병 등 150여명이 전부로 썰렁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접한 유족들은 "아들의 유해를 현충원에서 되찾아오겠다", "북한 김정일보다 남한사람들이 더 무섭다", "한국을 떠나고싶다"는 피맺힌 절규를 날려보냈다.

▲대독된 대통령의 메시지까지 유족들의 심사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6명 장병의 죽음을 몰고 온 북한의 군사도발을 비판하고, 안보 결의를 다져야 할 대목에서 김선일씨에 대한 테러만행 규탄으로 엇나가 버린 것이다.

유족들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서해바다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계기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었을 것이다.

북한군 만행에 희생된 장병들은 남북장성급회담이라는 '놀라운 변화'의 장식물에 불과했다는 의미로 연결된다.

▲지금 우리는 도착(倒錯)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교통사고 당한 여중생들이 열사처럼 떠받들려지고, 테러피살을 당한 이라크 진출 민간회사 직원이 영웅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에 비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국군장병들은 관심 밖이다.

공통점은 단 한가지다.

반미와 친북으로 죽음을 당하면 화려한 정문을 세워주고, 친미와 반북으로 죽으면 냉소의 깃발을 꽂아두는 것이다.

이런 해괴하고 황당한 나라에 살고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호국 보훈의 달 마지막 날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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