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 있고 고결한 선비로 살다 간 위당 정인보(鄭寅普)의 스승을 극진히 모셨던 일화는 각별하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자신의 학문에 큰 영향을 준 스승 이건방(李健芳)을 만났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는 질퍽한 땅바닥에 엎드려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
평소 친교가 두터웠던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일제에 지조를 굽혔을 때는 조사를 지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조가 있고 고결할수록 엄격하면서도 스승에 대한 예우 또한 깍듯했던 마음과 몸가짐의 귀감이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요,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현실은 그 전통을 무색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여서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존경과 참된 권위의 대상이었던 스승의 상이 이지러지고 땅에 떨어졌으며, 위대한 인물 만들기에 엄격해야 할 스승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달 말 정년퇴임 하는 서울대 조동일(趙東一.국문학) 교수가 회고록 '학문에 바친 나날 되돌아보며'(지식산업사)를 펴내 화제다.
1968년 계명대를 시작으로 영남대.정신문화연구원.서울대까지의 36년반에 걸친 교직생활을 회고하고, 제자 75명의 글을 보탠 책으로 그의 지성 편력을 정리했으며, 제자들의 기억에 기댄 사제동행의 일화들을 엮어 미담을 낳고 있다.
▲5년 전 회갑 때도 제자들의 논문 헌정을 마다하며, 3권의 저서로 잔치를 대신했던 조 교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은 물론 결벽증이 남달라 '괴물'로 기억되기도 한다.
제자들은 '수업에 1분이라도 늦으면 강의실 입장이 거부됐고, 과제 제출이 늦으면 아예 성적이 나오지 않아 낙제를 면할 수 없게 하던 깐깐함'을 떠올리는가 하면, 강의나 논문 심사 때 논박을 넘어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제자들의 회고담에 그는 '잘못해서 용서를 구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엄격한 학문적 자세에 대한 반성은 아니어서 역시 그답다는 생각도 든다.
인문학 논문 200여 편과 50여 권의 저서를 낸 학문적 열정과 석.박사 100여명을 배출한 스승으로서의 그는 이 시대에 돋보이는 학자가 아닐 수 없다.
처음 출발했던 계명대의 석좌교수로 향후 5년 간 강단에 계속 선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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