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신문/과거장 부정행위 '도' 넘었다

조선 전기에도 과거 때 시험 부정을 저지르는 자는 적잖이 눈에 띄었. 책을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와 베끼는 사람, 글 잘 짓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대신 짓고 쓰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시험관과 짜고 채점 때 가산점을 받으려다 적발된 자도 있었다.

합격한 남의 답안지를 훔치는 자가 의금부에 체포되기도 했다.

부정시험으로 적발된 자는 두 차례 시험응시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 후기에 오면서 과거는 타락에 타락을 거듭했다.

족집게 대리시험이 등장했고, 답안지를 바꾸는 사람도 등장했다.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합격자의 이름을 바꾸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과거장에서 바깥으로 통할 수 있도록 대나무 통을 땅에 묻어 시험지를 유출해 정답을 쓴 후 다시 시험장 안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후기에는 답안지를 먼저 내는 사람의 합격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주관식인 답안지를 다 읽어보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엄청난 답안지를 꼼꼼히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채점은 하루만에 끝나야 했으니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정조 때는 초시 답안지와 이튿날 치른 인일제 답안지가 7만장이나 됐다.

채점관들은 일찍 낸 답안지만 훑어볼 뿐 뒤에 낸 답안지는 채점조차 않았다.

그러니 과거 응시자들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먼저 답안지를 내기 위해서이다.

전문 싸움꾼이나 노비를 시켜 자리를 잡아 두는 일이 일상이 됐다.

과거장은 짐꾼과 장사치, 싸움꾼들이 판치는 난장판이 돼 버렸다.

타락에 타락을 거듭하던 과거는 갑오경장으로 폐지됐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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