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신문/과거 시험과 관리의 일생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인 조선에서 과거는 출세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양반집 자손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매달린다.

이들 중 극히 일부가 문과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

급제한 사람이 모두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정치인 이항복의 고백을 통해 문과급제 과정과 관리로서의 일생을 살펴본다.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편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활달하고 힘이 센 편이었습니다.

늘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씨름이나 공차기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크게 상심하셨습니다.

'죽어서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를 뵙겠느냐'는 말씀이었지요. 아버지는 문종 때 급제하셨고, 당상관을 지내신 분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중단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내가 급제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지요. 내 나이 열 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삼년상을 마친 뒤에 유일한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해 진사시험을 쳤습니다.

성균관은 생원과 진사를 각각 100명씩 뽑습니다.

먼저 전국의 유생을 대상으로 일차 시험인 초시를 치러 700명을 뽑습니다.

합격자들은 한양에서 이차 시험인 복시를 치릅니다.

나는 진사시험에 도전했지만 복시에서 떨어졌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성균관에는 기재생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정규 학생인 생원, 진사 외에 15세 이상 학생을 대상으로 구두로 소학 시험을 거쳐 100명을 뽑아 가르칩니다.

말하자면 청강생이라고 할까요. 청강생으로 성균관에서 공부해 문과시험을 쳤습니다.

조선은 양반, 즉 문반과 무반사회이지만 문치주의에 따라 문반을 더욱 우대하지요.

24세에 문과에 합격했습니다.

성균관에서 공부한 지 5년만인데 빠른 편입니다.

저처럼 일종의 청강생인 유학(幼學)들의 문과시험 합격률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문과시험 합격자 중 70% 이상이 생원과 진사들입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고 며칠 지나 합격증서를 받았습니다.

합격증서 수여식은 '창방의' 혹은 '방방의'라고 불리는데, 그때 국왕을 가까이서 처음으로 알현했습니다.

문·무과 급제자와 부모형제들이 모두 참석하는 자리입니다.

호명에 따라 국왕께 사배례를 올리고 합격증서인 홍패를 비롯해 술과 과일을 받습니다.

물론 시가행진 때 꾸밀 어사화도 받습니다.

'창방의'가 끝나니 의정부에서 곧바로 급제자들을 위한 축하잔치를 열어주더군요. '은영연'이라고 불리는 행사입니다.

악공이 연주하고 기생은 술을 권합니다.

재주꾼들이 재주를 부립니다.

풍악이 끊이지 않습니다.

대단한 잔치입니다.

축하행사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날에는 국왕께 사은례를 올립니다.

그 다음날엔 성균관 문묘에 가서 공자의 신위에 참배합니다.

사흘 간 시가행진도 이어집니다.

'유가'라고 불리는 행사인데 앞에서 천동이 길을 인도하고, 악수가 풍악을 울리고, 갖가지 재주꾼들이 흥을 돋굽니다.

유가가 끝나면 지방출신 급제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시가행진을 합니다.

물론 광대들과 악사들이 따릅니다.

고향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급제자가 귀향하는 날 고을 사람들과 관리들이 모두 나와 이를 환영합니다.

고을 수령은 급제자와 가족을 불러 주연을 베풉니다.

과거급제는 본인과 가문뿐만 아니라 지역의 영광이니까요.

과거에 급제했지만 저는 일종의 수습직인 권지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별시가 자주 실시되면서 과거 합격자는 늘었지만 자리가 부족했던 때문이지요. 그러나 갑과에 합격한 사람은 바로 품계를 받습니다.

갑과 중에서도 장원에 합격한 사람은 종6품계로 중견관료이자 지방수령이 될 수 있는 참상관에 바로 진출합니다.

저는 갑과나 을과보다 성적이 못한 병과에 합격했습니다.

저처럼 병과로 합격한 사람이 참상관이 되는데는 6년이 걸립니다.

관직생활을 시작하면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습니다.

면신례라는 일종의 신고식입니다.

신참이 선배 관료들에게 발령 받았음을 알리고 자신을 소개하는 절차입니다.

밤새 술과 노래를 대접해야 하고, 온갖 수모를 받습니다.

선배 관료들은 신참의 얼굴에 거름을 바르거나, 밤새 춤을 추게 합니다.

면신례에서 뇌물이 오가기도 합니다.

면신례를 잘 치르는 신참들은 선배들로부터 인품과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관직생활이 순탄합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국왕들이 처벌 조항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임시직을 끝내고 처음 발령 받은 곳은 승무원이었습니다.

이후 예문과 검열을 거쳐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문과 급제자들이라고 모두 저처럼 요직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의 출세에는 경주 이씨인 우리 집안도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영의정을 지낸 권철 대감의 손자사위라는 점도 강력한 배경이 됐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영의정 권철의 손자사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능력과 인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임금의 은혜와 제 실력, 그리고 외가쪽의 인맥으로 영의정까지 올랐습니다.

급제자 중에 1% 미만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입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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