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다시 선출됨에 따라 향후 미국의 행보를 두고 우려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동맹보다는 미국의 안보가 우선'이라는 일방주의 기조가 더욱 노골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이 유지될 것이란 예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전 세계에 걸쳐 '제국'을 구축해가는 미국의 발걸음이 부시의 재선으로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 벌써부터 힘을 얻고 있다.
프랑스 미래학자 기 소르망이 친미도 반미도 아닌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미국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주장했듯이 '미국 제대로 알기'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다 그 영향력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한층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받는 나라이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증오와 배척의 대상이 돼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이상한 나라' 미국의 실체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론인이며 정치학자인 에릭 프라이가 쓴 '정복의 역사, USA'는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국내·외교·군사·환경 정책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살육을 당한 수백만의 인디언들,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 베트남 전쟁, 칠레와 니카라과 독재자에 대한 지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최초의 핵 투하, 수십 년 이어져온 핵무기 경쟁, 국제법의 파기, 다자적 세계질서의 파괴, 이라크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등. 세계 정치와 경제 무대에서 그리고 자국 시민을 대상으로 미국이 벌인 죄악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 '친구 아니면 적' 선포
▲ "편집증에 걸린 나라, 미국"
에릭 프라이는 미국을 정의하며, 1960년대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제시한 '편집증적 스타일'을 내세우고 있다.
세계를 선과 악의 각축장으로 보고 막강한 적의 상(像)을 구축한 후 그 적을 파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냉전시대 소련이라는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으로 나눠 전 지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무모한 핵 경쟁을 비롯해 매카시 열풍, 베트남 전쟁으로 촉발된 도미노 이론, 흑인에 대한 탄압 등을 들고 있다.
미국사 이면에 흐르던 이 같은 편집증적 스타일은 동구권의 몰락으로 몇 년간 방향을 잃었다 9·11 테러로 다시 '해방'을 맞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부시는 세계에 대해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하든지 아니면 테러리스트들 편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더 이상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닌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가 문제가 되자 부시는 자신이 만든 '친구 아니면 적'의 도식 안에서 국제법과 기본 시민법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 더불어 편집증적 세계관으로 인한 폐해도 적시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좀 더 나은 국제적 질서를 선보일 가능성을 편집증적 태도로 인해 미국 스스로 세계와 단절하고, 세계의 적들로 둘러싸인 형국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 불안이라는 문화에 빠진 미국
오늘날 미국은 외교나 사회정책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까지 수많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약물 판매상, 아동 추행범, 유해한 담배, 그것도 모자라 테러리스트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초록부터 빨강까지 안전등급을 매길 정도로 테러 공격을 두려워하는 불안 문화가 팽배한 곳이 바로 미국이란 얘기다.
◇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
에릭 프라이는 그 불안의 원인을 미국 바깥이 아닌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서 찾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믿는 초강대국은 특히 그 지도자가 선의 쪽에 서고자 다짐할 때 더욱 위험하다며 부시의 정책을 꼬집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노선과 사회복지의 후퇴, 부유층이나 친자본 위주의 경제정책 등의 문제점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부시와 그의 백악관 보좌관들도 앞서 설명한 '편집증적 스타일'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규정한다.
"이 책은 일개 정치인이나 잘못된 몇 개의 오판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합중국에 무엇인가 냄새를 풍기며 상해가고 있는 것이 있음을 일깨우고자 한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나라가 잘못되고 위험한 노선을 추구하며 그들 고유의 이상을 점점 배반하고 있다.
"
미국의 어두운 면을 주로 다루면서도 에릭 프라이는 반미주의로 흐르지 않으면서 미국에 대한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증명했다는 것이다.
바로 노예제도의 폐지, 남북전쟁 상처의 치유, 뉴딜을 통한 세계경제위기의 극복, 매카시 시대의 정치적 박해에서 탈피, 공공연한 인종차별의 종식, 닉슨에 대한 사임압력과 성공 등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능력을 미국인들이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 능력이 다시 보일 때쯤 미국의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보일 것이다.
"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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