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클릭-대구문화재단 설립 논의

공조직보다 민간조직의 효율성이 높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국내 문화예술계에서도 민간 자원과 전문역량을 가진 문화예술진흥 전담 기구, 즉 문화재단의 설립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이미 경기·강원·제주도, 서울·부천·강릉·고양시에 문화재단이 설립돼 있으며 이달 중 인천문화재단이 출범할 예정이다.

대구에서도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문화재단 설립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대구문화재단 설립은 최악의 지역 경제 상황과 열악한 대구시 재정 문제 때문에 논의만 활발한 뿐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대구문화재단 설립 가능성과 올바른 운영 방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대구문화재단 설립, 기금 확보가 최대 관건

지역별로 운영 방식과 사업 분야가 조금씩 다르지만 문화재단은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 위탁·대행 △지자체 소유 문화예술 인프라 위탁 경영 △자체 문화사업 기획 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 한국문예진흥원이 있으니 지역별로도 이에 상응하는 민간조직이 있어야 한다는게 문화재단 설립론의 요지이다.

만약 대구문화재단이 생겨난다면 명실상부한 대구 최대의 문화예술 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업 영역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의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대구시의 문화정책을 집행하는 민간 기구로서 지역 문화예술계의 중심축이 될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문화재단 설립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같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웬만한 기금 규모로는 운영비 대기도 벅차다.

이 같은 이유로 인천시는 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오는 2010년까지 총 1천억원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며, 서울문화재단도 기금 조성 목표액을 3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대구문화재단 설립의 핵심적 전제 조건 역시 어떻게 기금을 조성하느냐이다.

대구예총이 최근 개최한 '대구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시민대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는 집중적인 논의 대상이었다.

이날 정광렬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구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최소한도의 기금 규모는 300억원"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의 금리를 감안하면 1천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윤석 문예진흥원 정책실장은 "1천억원의 기금을 마련하더라도 연간 이자수입은 40억원 정도밖에 안된다.

이 정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대구문화재단이 독자적 재원을 마련할 때까지 대구시가 경상비를 보조해줘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몇백억원 정도의 기금 규모로는 대구문화재단을 만들더라도 인건비를 대기 급급할 뿐 기획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구시, 기금 댈 형편되나?

양 실장의 지적대로라면 대구시는 대구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 이외에도 매년 몇십억원씩 대구문화재단에 보조해 줘야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천의 경우 일단 300억원 기금으로 인천문화재단을 이달 중 설립한 뒤 수십억원에 이르는 경상운영비를 매년 보조해주기로 가닥을 정했다.

그러나 최악의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구시의 살림 여건상 이 같은 막대한 부담을 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구시는 현재 일반회계(1조8천억원)의 절반 가까운 7천8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으며 내년에도 5천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갚아야 할 형편. 이 때문에 조해녕 대구시장 취임 이후 대구시는 신규 사업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 논의가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2003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에 따른 잉여금 300억원이 조성돼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U대회가 체육행사에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축전으로서 의미도 컸던 만큼 그 잉여금 중 일부를 문화재단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냐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권정호 대구예총 회장은 "U대회 잉여금 가운데 3분의1 정도와 대구시의 문예진흥기금 조성액(37억원), 대구시 추가 출연, 문예진흥원 기금 지역 배분 등을 통해 대구문화재단 최소 설립금 300억원 정도를 조성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U대회 잉여금에 대한 대구시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시 문화체육국 한 관계자는 "U대회 잉여금은 U대회 조직위가 2006년말까지의 수입을 결산한 뒤 대구시 일반회계에 귀속시켜 용도를 결정할 예정인데, 대구 스포츠의 국제화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권력 경계론

대구문화재단은 그 핵심적 전제인 재원 조성 문제부터 벽에 부딛힌 상태이다.

이 때문에 대구시도 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 의뢰 등 본격적인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

김종협 대구시 문화예술과장은 "문화재단 설립 필요성엔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 대구시의 재정 여건으로는 문화재단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며 "대구시 재정 형편이 나아지는 2006년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보였다.

대구시 부채 상환 계획은 내년을 정점으로 해, 2006년부터는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인환 대구시 예산담당관은 "대구지하철 2호선 투자 및 대구선 이설사업 등 대규모 사업들이 내년에 종결되고 나면 내후년부터 대구시의 투자 여력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구문화재단이 설립된다 치더라도 '문화 권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염불'(대구 문화예술 발전)보다는 '잿밥'(자리)에 관심이 많은 소수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문화재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양효석 문예진흥원 정책실장은 대구문화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대구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 최대 목적이어야 하며 소수 예술가들에 의해 좌우되는 시스템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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