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페인 지하성당 앞에서

세계 최대의 성당은 로마의 바티칸 성당이다. 그러나 실제 길이로 볼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은 스페인의 지하 땅굴 속에 있는 '바예 데 로스 까이도스' 지하성당이다. 마드리드 서쪽 외곽의 암반 산을 뚫어 말 그대로 땅굴 속에 지어진 대성당은 길이가 300m로 기록돼 있다.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260m)보다 약 40m 더 길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내부에 중간 문을 만들어 가톨릭 교회의 상징적 성전인 바티칸 대성당보다 짧게 만들었다고 한다. 64년 전에 착공, 19년 만에 완성시킨 프랑코 총통이 '세계 최대의 성당'을 짓는다는 정치적 야망도 종교계의 벽만은 뚫지 못하고 중간문을 만들어 '최대'를 포기, 바티칸의 권위를 넘보지 못했다는 게 정설이다. 대신 지하성당에 산 정상에는 높이 138m, 무게 18만t의 거대한 대리석 십자가를 세웠다. 성당 입구에 조각해 놓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의 크기도 무려 12m로 같은 모습의 성상(聖像) 조각으로는 세계 최대다.

스페인에 36년간의 철권 정치를 휘두른 군부출신의 프랑코 총통이 왜 굳이 그런 거대한 성당을 그것도 지하에 세웠을까. 프랑코는 1936년부터 3년간 전 스페인을 초토화 시키다시피한 스페인 내전 당시 혁명군쪽의 군 지휘관으로 왕당파를 누르고 36년간 집권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내전이 끝난 직후 1년만인 1940년 집권 첫 사업으로 지하대성당 건립을 명령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지만 명분과 대의는 오늘날 분열과 갈등으로 지새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묵시적 교훈을 던진다.

프랑코의 지하대성당의 이름을 스페인 말뜻대로 해석하면 '전몰자(戰沒者)의 계곡'이다. 다시 말해 호국영령을 기리는 충혼탑이나 국립묘지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건물의 양식은 군인의 전투모습을 조각하거나 묘지 같은 양식이 아닌 지하성당으로 조성했다. 그리고는 스페인 내전 당시 죽어간 60만 영령들을 모셨다. 왕당파였든 공화파였든 동족간의 부질없는 살상의 비극을 대성당이라는 상징적인 화해와 포용의 공간 속에 아우르고 녹여 담으려 한 것이다.

성당안 벽에 새겨놓은 '하느님과 스페인을 위하여 스러지다'는 명문(銘文)은 적도 아군도 승자도 패자도 집권자도 실권자도 다같은 스페인의 피를 나눈 형제라는 국민통합을 선언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스페인 지하대성당을 보면서 집권 2년이 가까워오는 노 정권의 국민통합과 화합 역량을 생각해본다. 과거사 관련 법안과 함께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4대 입법문제와 끊임없는 군부와의 갈등설, 장관과 대통령간의 엇갈리는 국정 철학, 일부 공직사회의 혼돈과 분열은 늪속의 밤안개처럼 걷힐 기미가 없다.

오랜 내전으로 찢어진 상처와 원한도 성당의 제단 앞에서 함께 치유해 내는 아량과 배포와 큰 가슴이 왜 우리 집권자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서는 나오지 못하는가. 군사정권때 시달린 우리의 386 집권층은 틀림없이 프랑코를 전형적인 군사독재자라 말할 것이다. 물론 철권정치의 인물이었던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는 30년 전 권력에서 물러나 죽으면서도 지하대성당에 묻히는 영광을 국민들로부터 받아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화된 새 정치권과 국민들이 유해를 옮겨 꺼내지 않는 것을 보면 독재에 대한 과거 심판보다는 미래의 화합과 통합을 더 큰 가치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초기 프랑코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스페인 피레네 산맥에서 한국 공수부대의 훈련을 시킨 의미도 대성당 하나로 내전으로 동강난 국민분열을 치유해 낸 프랑코식 통치의 장점을 뚫어보려 한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분열과 갈등을 무엇으로 풀어나가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균열은 시간이 늦어질수록 더 빠른 속도로 넓고 크게 퍼져 나가는 법이다. 지금쯤 스페인의 지하대성당 같은 상징적인 화해의 무엇인가가 나와야 한다. 건축물이 아니어도 된다. 급한 대로 믿음이 가는 슬로건이나 비전이라도 좋다. 행동과 모범이 따르면 더욱 좋다. 꼭히 정치 지도자가 나서지 않아도 상관없다. 국민운동이든 국풍(國風)이든 날이 갈수록 더욱 잘게 찢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만은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반독자 반군사문화의 신봉자였던 우리 집권층부터 독재자 프랑코가 만든 지하대성당의 '신과 스페인을 위하여…'의 정신만은 기억해주는 아량을 가져보자. 운동권적 시각과 독선과 아집을 벗어던지자. 그러면 아마도 보수가 밉기만 해 보이는 눈에도 국민통합의 정치, 화해 속에서 길을 찾는 진정한 개혁의 정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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