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2004년이 지나가고 있다.
마치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이제 막 들어서는 느낌이다.
지방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던 참여정부가 들어선지 2년 가까이 되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의 이상은 이제 그 현실의 쓴맛을 보고 허둥지둥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지방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보면 지금의 위기는 지방의 진정한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며, 지방이 어떤 일을 해야 자생력 있는 지방자치가 될 수 있는가를 일깨워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지방자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한계를 지적하고, 지방살리기에 대한 평소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밝히면서 지방의 분발을 위한 대구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지방의 몰락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지방의 몰락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막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담론이 필요하다.
또 지방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구체적으로 지방의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일각에서 수도권의 인구, 경제, 교육의 집중 현상을 시정하라는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마련은 결코 쉽지 않다.
일자리, 교육기회, 대중문화가 번창하는 수도권에 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그들은 지방분권과 적극적 지방투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방분권과 적극적 지방투자로 지방이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방 분권과 투자는 지방정부와 소수 지방기득권의 입지만 강화시킬 수 있다.
지방이 몰락하는 이유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적어서도 아니며, 지방에 대한 투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권한과 투자를 증대시켜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협력 체제와 개방적 자세가 미흡하다는 점이 근본 문제이다.
지방의 여론은 일부 보수 엘리트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민감한 기득권 집단이며, 폐쇄적 연고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에 권력의 공유나 열린 담론의 전개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한심한 일이지만 지방에는 내부 비판도 없고 내부 교류도 없다.
모두가 자기 것 지키기에 급급하며, 개방과 교류를 위한 협력네트워크의 구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방과 수도권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땅히 지방 살리기의 핵심주제는 열린 참여와 협동 네트워크 형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 대한 투자와 분권은 참여와 협력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의의를 가져야 한다.
현 상태에서의 지방분권은 지방 정치의 과오를 촉발시킬 수 있으며, 투자의 증가는 선심성 사업 발주나 일회성 소비로 치달을 수 있다.
지방 정부에 대한 지원은 주민 및 시민단체와의 열린 정책 네트워크 구성 여부에 따라 차등화돼야 하며, 교육부문에 대한 지원은 학교별 지원이 아니라 협력적 교육네트워크 및 지역 학술재단의 설립 등과 같은 공유적 개념의 교육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제적 지원도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경제협력망의 구성에 대한 것이라야 한다.
문제는 참여와 협동의 네트워크에 대한 실천이 지방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힘들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로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도시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지방자치능력과 주민참여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여 자치의 기제를 만드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지방의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야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방화선언이 자칫 지방 정부와 보수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작업은 지방의 혈액순환을 막는 연고주의와 보수주의를 타파하는 일이며, 동시에 주민참여와 협동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활력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무릇 지방화선언은 지방의 경제를 수도권 같이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수도권을 능가하는 품격 있는 참여 자치를 하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 살리기가 우리 수준에서 가능해지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전영평 대구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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