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승용차를 타고 출근한다. 자판기로 커피 한잔을 뽑아먹고 점심은 패스트푸드로 간단히 해결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든다….'
매일 똑같은 우리의 일상에서 '환경'과 '미래'를 본 적이 있는가? 음식, 주거문화, 주변 기기 등 생활 모든 요소가 사실은 우리 생활 태도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산업 구조 등을 공통적으로 반영한 양식이자 사상이다. 한국계 일본인으로 환경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저자 쓰지 신이치(한국명 李珪)는 '슬로 라이프'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생활의 모든 요소를 낯설게 거리를 둔 후 하나하나 점검해나간다.
먼저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을 다시 들여다보자. 편리함, 개발, 진보 등은 또다른 시각에서 볼 땐 공해와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요소일 뿐이다. 편한 것이 반드시 즐거운 것은 아니며 즐거운 일이 때로는 어렵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개발은 근대화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데올로기이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다.
◇ 잡일·게으름의 중요성 회복을
저자는 '빠름과 근면'에 대한 전사회적인 예찬을 거둬들이고 '빈둥거리기, 잡(雜)일, 게으름'의 중요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잡(雜)'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저자는 말한다. 잡초, 잡목림, 잡곡, 잡종 등은 재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고 자신만의 속도대로 살 수 있는 게으름뱅이의 생활도 비난받아선 안된다는 것.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느리게 살아가기'를 제안한다. 음식, 주거 , 놀이 모든 것이 느림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슬로 푸드는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잡곡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식탁에서 푸드 마일리지를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푸드 마일리지란 자신의 식탁에 놓인 음식물이 얼마나 멀리서 운반되어 왔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자신들의 식생활이 얼마나 환경에 부담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또 새집 증후군을 걱정하면서도 환경파괴적인 집을 짓는 우리에게 대안으로 스트로베일(straw-bale) 하우스를 소개한다.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간 북미, 호주 등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뛰어난 단열성에다 값이 싸고 내구성, 내진성, 방충성도 이미 검증을 마친 상태다. 건축방법이 간단해서 비전문가도 설계에 참여할 수 있어, 구체적인 대안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 시작은 '산책'에서부터
뿐만 아니라 '개발'에 몰두하느라 환경은 물론이고 정서까지 피폐해진 우리나라 지자체 난개발에 경종을 울릴 만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도호쿠(東北)지방은 '없는 것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 찾기'로 성공을 거뒀다. 마스다 히로야 지사는 '분발하지 않기 선언'을 발표, 지역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있는 것 찾기'를 시작한다. 그 결과 수십년 전 만들어진 물레방아와 잡곡, 그리고 활력이 넘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을 찾게 된다. 도호쿠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결합시켜 '숲속의 메밀국수집'을 만들게 되고 큰 성공을 거둔다. 이는 각 지자체의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에도 의미심장한 지역발전의 예를 보여준다. 시각을 달리하는 것에 따라 그 지역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이고 풍요롭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안정된 생태계와 자족적인 공동체를 토대로 한, 느리고 성숙한 삶에 있다. 그렇다면 슬로 라이프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그 시작을 '걷기'에서 찾으라고 권한다. 목표 없이 산책하는 것. 산책을 되찾을 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고 이웃이 보인다는 것이다. 삭막하고 경쟁으로 팽팽해진 삶에 지친 이들은 오늘 당장 산책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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