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PL소송 대비 보험 가입하세요"

'살아있는 동물을 전자레인지에 넣지 마세요.'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소송 때문에 이후 미국 제조회사들은 제품에 이런 황당한(?) 경고문까지 추가하게 된다.

사건은 미국의 어떤 할머니가 고양이를 목욕시킨 뒤 빨리 말리려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다 고양이가 죽자 '왜 이런 위험에 대한 경고를 소비자에게 하지 않았냐'라며 전자레인지를 수출한 일본회사에 소송을 걸면서 시작됐다.

그 때 소송의 근거가 된 법이 바로 'PL(제조물책임)법' 중 '경고상의 결함' 항목이다.

◇늘어나는 PL 사고

국내에서도 2002년 7월부터 PL법이 시행된 후 PL법 관련 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

2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대구경북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 PL보험 사고접수 건수는 46건으로 PL법 시행 초기인 2002년 16건에 비해 세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는 2002년 118건에 불과했던 PL법 사고가 지난해 399건으로 늘었다.

실제 지난해 5월 PL법 소송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는 한 제과회사 사장은 "곰팡이 핀 빵을 먹어 배탈이 났다는 항의가 들어와 평소처럼 조용히 합의하려고 했는데 소비자가 PL법을 들먹이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라며 "PL법을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 보험도 들지 않아 500만 원을 주었는데 앉아서 뺏긴 기분"이라고 했다.

특히 PL법은 제품 설계에서부터 제조, 판매, 폐기에까지 전 과정에 걸쳐 안전성이 확보돼야만 면책사유를 가지는데 중소기업들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대비하기는 쉽지 않다.

PL사고 추세가 대형화, 집단화, 고액화하고 있어 집단소송이나 고액 PL사건이 발생하면 도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다섯 살 아이가 장난으로 친구에게 장난감 화살을 쏘다 화살촉에 박힌 고무가 빠져버린 채 상대방 아이의 눈을 맞춰 실명시킨 사고가 있었다.

비록 제품에는 '8세 이상 아동만 사용'하도록 명시하였으나 안전과 밀접한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장난감회사 측은 막대한 변호사 비용에다가 손해보상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발생한 압력밥솥 폭발사고, 쓰레기 만두사건 등 소비자들의 안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사건들 모두가 PL법 적용대상이며 만약 집단소송으로 이어졌다면 그 액수가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PL법 대책은 소홀

소비자 권익이 강화되는 추세에 맞춰 PL법에 대한 대비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지역기업들의 PL보험 가입율은 저조하다.

중기협중앙회 대구지회에 따르면 PL보험에 가입한 지역 중소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131개 업체로 5인 이상 지역중소기업(1만2천854개)의 1%에 불과하다.

전체 PL보험 가입건수 2천496건의 5.3%로 경기(36.5%), 충청(9.2%), 부산·경남(8.6%) 등에 뒤진 것이다.

특히 지역중소기업들은 부품소재업체란 이유로 가입 자체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협 중앙회에 따르면 완성품업체가 집결돼 있는 수도권의 PL보험 가입률은 4%인데 반해 지역기업들은 1%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품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완성품 업체가 부품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부품업체라고 PL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또 현재 미국, EU, 일본, 중국 등 전세계 37개국이 PL법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주의할만한 대목이다.

지역기업 대부분이 수출기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에서는 PL전문 변호사를 끼고 수억 원을 요구할 만큼 적극적인 피해보상요구를 하는 추세다.

소비자관련법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2008년 '소비자 단체소송'과 2010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제품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저렴한 PL보험료로 대처 가능

PL보험료는 보상범위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PL보험료는 업종별, 매출액에 따라 다르지만 중기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PL단체보험을 예로 들면 매출액 10억 원 규모에 상대적으로 사고율이 낮은 '섬유'업체의 경우 연간 20만 원의 보험료로 1억 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수출보험공사가 운영하는 '신뢰성 보험'이나 민간 보험회사들이 운용하는 PL보험가입도 PL사고 대비의 한 방법이다.

중기협중앙회 대구지회 PL담당 윤지영 대리는 "지역중소기업들에게 PL보험 가입 권유를 하면 PL법 자체를 모르는 업체가 다수다"라며 "중앙회에서 운영하는 PL단체보험은 개별 가입 때보다 20% 이상 저렴하고 각종 법률서비스까지 무료로 대행해준다"라고 했다.

문의 053)524-2501.

△PL(Product Liability)법=소비자 또는 제3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생명·신체·재산에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제조업자 또는 판매업자가 책임을 지고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

이재교 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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