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정훈이입니다. 졸업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요. 1년 동안 말썽부리고, 장난도 많이 쳐서 죄송합니다.
그런 저를 혼내지 않으시고, 이해를 많이 해주셔서 고마워요. 표현력이 부족한 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하지만 전 선생님을 무척 존경하고, 사랑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선생님, 저희 부모님께서도 일 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졸업식 날, 선생님께서 주신 졸업을 축하하는 메시지 제 책상 유리에 끼워 두고 매일 몇 번씩 읽으며 선생님을 생각할 겁니다.
읽을 때마다 선생님께서 읽으시다가 못다 읽으신 모습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만큼 후배들에게 하시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선생님 생각날 때마다 글 드릴게요. 지난 2월 졸업한 정훈이가 메일로 보낸 편지이다.
묵은 둥지를 정리하고 새로운 둥지를 트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마흔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기억들이 이젠 과거가 되었다.
꾸지람보다 칭찬이 더 필요했던 그들을 내 방식대로 몰고 갔던 일들이 떠올라서 떠나보내던 그날 가슴 한켠이 저렸었는데….
간섭과 잔소리가 더 필요하다는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익숙해진 습관으로 둥지를 튼 나무 주위를 빙빙 도는 새들을 더 넓은 세계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그들의 날갯죽지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졸업식 다음날 정훈이로부터 받은 편지는 떠나보냄이 결코 슬픔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큰 꿈을 펼쳐갈 그들의 끝없는 도전 앞에 힘찬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마음 속의 묵은 둥지를 채 손질하기도 전에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서른여덟 명의 아이들이 내 품 속으로 들어왔다.
노란 이름표 하나씩을 콩닥거리는 가슴에 달아주면서 나는 또 어김없이, 잘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였다.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칭찬, 떠나보낸 아이들에게 너무나 인색했던 칭찬을 앞으로 일 년 동안 듬뿍 해주리라고….
공부 시간이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쉬는 시간에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생글거리는 새내기들의 모습 뒤편으로 불현듯 환영처럼 보인다.
나보다 훨씬 키가 컸던 관영이와 찬울이,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한 영재, 항상 말이 없었던 유진이, 졸업식 날 모두 떠난 교실 뒤에서 눈물 흘리던 인준이, 동방신기를 좋아했던 여학생들, 어려운 책을 즐겨 읽었던 재우, 그리고 항상 웃던 현식이의 정겨운 모습이.
학교 울타리에는 곧 개나리가 줄지어 피고, 나무마다 물이 올라 새순들을 뽑아 올릴 것이다.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운동장에는 힘차게 공을 차며 뛰노는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봄 햇살보다 더 부신 웃음이 매달려 있다. 창문 너머로 그런 모습을 내다보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삭정이들을 물어 와서 포근한 둥지를 함께 지어야겠다. 햇볕이 좋은 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젖은 모래밭에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목청껏 외쳐 부르면서 행복한 모래집 짓기 놀이를 할 것이다.
금세 허물어질 수 있는 두꺼비집일지라도 온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는 보송보송한 손길들과 연신 재잘거리는 입언저리에서 몹시 들레는 희망을 읽으며…. 그러다 보면 봄 햇살 잘 받은 우리 아이들도 곧장 떡두꺼비처럼 튼튼하게 자라나게 되리라.
김세진 시조시인·영신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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