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기러기 아빠의 회초리論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필자는 체벌 지지자 쪽이다.

자식이든 제자든 필요하다면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고 강인한 인간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실제로 큰 아들녀석이 고1학년 때 수성못 옆 모 고아원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데리고 가서 죽도(竹刀)로 엎드려뻗친 엉덩이를 번호 세도록 해가며 수십대 때린 적이 있다.

굳이 고아원이 보이는 곳을 택한 것은 부모님 보살핌이 없는 역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저 아이들을 봐라, 네놈은 아버지 어머니가 학비, 용돈에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도 게으름 피우느냐는 깨달음을 바라고 한 짓이었다.

떠올리면 가끔씩 가슴이 따갑지만 그래도 제힘으로 취직해 장가간 자식을 보며 체벌교육을 후회는 않는다.

마침 오늘 아침 신문에 캐나다에 유학보낸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던 '기러기아빠'가 외국 법정에서 보호관찰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다. 사전 자식 버릇고치려고 든 한국식 사랑의 매가 외국에서는 아동학대의 폭행으로 인정된 판결이다. 필자도 그 법정에 갔으면 꼼짝없이 감옥행이 될 뻔(?)했다.

제자나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이 사랑이냐 폭력이냐는 논란은 모든 가정 모든 교실에서 똑같이 정의되기는 어렵다. 가르침을 위해서는 회초리가 필요하다는 부모도 있을 수 있고 어떤 이유로든 가정이나 교실에서의 체벌은 금지돼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담뱃대 하나만 들고도 인성(人性)교육과 집안 질서를 확실하게 장악했던 시절이 더 교육적이었는지 심신이 강해지라고 보낸 군대에서 자살자가 늘어나는 요즘의 유약한 체벌금지 시절이 더 교육적인지도 찬반이 엇갈릴 것이다. 신세대 부모들은 체벌금지 쪽을 대체로 지지하는 사회분위기지만 거꾸로 아이들 세계에서는 '일진회'같은 폭력이 더 판을 치는 세상이 돼간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인 학교 안에서 경찰관이 대신 폭력예방지도를 한다며 순시를 도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교권이 간섭당하고도 침묵하는 꼴이다.

노교장에게도 서슴없이 따지고 드는 전교조가 이런 꼴을 보고는 왜 잠잠한지도 이상하다.

일진회에 돈 뜯기고 얻어맞으면서도 항변 못하는 아이들이나 경찰 쪽에 교육의 장(場)을 내주고도 입 다물고 있는 교육당국이나 자신을 지키는 데 보다 강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심신이 강인한 인간을 기르는 것도 교육 목표의 하나라면 아이들은 일단 강하게 키워야 옳다.

회초리든 감동을 주는 비폭력적 사랑으로든 어쨌든 요즘 아이들 좀 더 강하게 길러야 한다.

주먹 센 일진회 패들보다 더 센 주먹을 길러주자는 뜻이 아니다.

속칭 '이지메' 폭력을 당할 때도 당당히 자신을 지키며 맞서는 강한 의지를 길러주고 맞더라도 비굴해지지는 않는 용기를 가르치자는 뜻이다.

족제비도 새끼가 이빨이 나면 굴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고 한다. 제혼자 들판 속에서 살아남는 의지와 용기를 단련시키는 것이다.

세계적인 여성CEO인 마가렛 휘트먼 여사의 부모는 그녀가 겨우 6세때 가족캠핑을 가던 날 차안에서 장난을 친다는 이유 하나로 차문을 열고 고속도로에 강제로 내려버렸다.

여섯 살짜리 딸을 혼자 고속도로 갓길을 걸으며 따라오게 한 것이다.

요즘의 한국의 부모 같으면 상상도 못할 방식이지만 휘트먼은 그때 체험된 근성과 강인함의 교육이 훗날 세계적 CEO의 승부근성을 길러냈다고 회고했다.

우리 선조들의 회초리 교육은 휘트먼의 6세보다 더 어릴 때부터 시작했다.

소위 하초이물(夏楚二物)이라는 회초리 교육이다. '하'는 싸리나무 회초리로 다섯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때릴 때 쓰는 회초리였고 '초'는 가시나무 회초리로 여섯 살 이상 아이를 때릴 때 사용했다.

여섯 살이면 부드러운 싸리나무 회초리보다 훨씬 단단하고 아픈 가시나무를 썼다는 얘기다. 회초리교육 찬미론이 아니다. 불을 끄고 떡을 썰어 회초리 없이도 감화를 준 한석봉식 교육이나 첫 벼슬길에 옷 안감을 붉은 천으로 만들어 입혀 단심(丹心)의 충성을 말 없이 가르친 정몽주 어머니식의 교육도 없진 않다. 폭력성 매는 분명 나쁜 것이다.

단지 오늘날 교사들의 손에서 회초리를 거두는 무벌무사(無罰無事)식의 학교교육, 과보호 일색의 집안 교육이 되레 이지메 폭력과 교권약화를 불러오고 있지나 않는지도 걱정해보자는 얘기다.

〈명예 주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