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1941년 12월 7일 무모하게도 진주만을 기습, 스스로 패망의 길에 들어섰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일치된 이론은 없다. 일부에선 당시 식민지배 강국들 간의 충돌이라거나, 일본의 아시아 영토 확장에 반대한 미국 영국 중국 화란 ABCD 국가의 일본 목조르기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일본내부의 미숙한 국가경영 시스템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라고 분석하는 일본인 학자 무라야마 마사오의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2년 전 '만들어진 일본'(Inventing Japan 1853~1964)을 쓴 영국의 사학자 이안 부루마도 이 설에 동조하면서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광신을 묘하게 얽어 근세기들어 급조한 '고쿠타이'(國體)망상이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한 본질적 원인이라고 했다.
1931년 만주, 1937년 중국 남경을 침공하는 등 일본이 소위 아시아 해방전쟁(大東亞戰爭)을 벌여 만행을 일삼자 미국은 1940년 일본에 항공유와 고철수출을 중단하고, 일본의 육군과 해군이 중국 땅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전면 오일 금수조치를 내리겠다고 통보했다. 오일 금수는 일본의 군대를 더 이상 중국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들것이 분명했다. 다급해진 일본은 오일과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히틀러'무솔리니와 동맹을 맺고 1941년 7월 인도차이나를 침공했다. 미국, 영국, 화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전면 오일 금수조치를 내렸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 제안이 나온 것은 오일 금수조치가 내리기 5일전인 이 무렵 해군 제독 나가노 오사미에 의해서였다. 해군 유지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미국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을 치면서 필리핀을 접수하면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히로히토 천황이나 고노에 총리는 물론 육군대장 도조 등 군부 사람들도 미국을 칠 생각은 없었고 아직 그럴 능력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 준비는 하더라도 미국과 10월까지 외교적 협상을 계속 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일본은 육군과 해군이 중국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게 되고, 연합군이 오일 금수만 해제한다면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은 일본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0월은 다가오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일본의 고노에 총리는 외무대신과 함께 육군'해군 대신 등 각료들을 자신의 사저에 불러모았다. 총리와 외무대신은 미국과의 협상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피하는 길은 일본군이 중국에서 철수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해군 제독 야마모토도 미국과의 전쟁은 잘 해야 1년정도 버틸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바 있었다. 총리와 외무 대신은 해군대신이 전쟁 수행 능력의 실상을 밝히고 육군 대신을 설득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해군 대신은 진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육군 대신도 전쟁을 내심 원하지 않으면서도 철군만은 완강히 반대했다. 전시체제에서 총리는 군부를 설득하거나 제지할 힘이 없었다. 모두가 신성한 '고쿠타이'에 거역하는 배반자가 될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정권을 쥔 사람은 천황이었지만 '고쿠타이'의 핵심인 천황도 실상은 각료 대신과 군부에 의해 이끌려 가는 '신성한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누구도 사실에 근거해 국가운명에 대해 책임성 있는 결단을 내릴수 없는 상황이어서 사태는 시간이 가는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11월 26일 미국의 최후통첩을 받은 그 당시 총리 겸 내무대신 도조 장군은 11일후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다.
태평양전쟁은 전범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참전국에 20세기 최대의 희생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만들어진 일본'의 저자 부루마는 이 같은 재앙의 원인을 천황을 중심으로 한 초군사제국주의 '고쿠타이' 국가체제의 총체적 결함때문이라고 보고, 이러한 막가파식 양태는 일본이 경제대국화 되는 과정서 크게 순화됐으나 언제 또다시 극단적 우경화로 나타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런 예측이 적중하는 것일까.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개악 등으로 동아시아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최근 전시의 천황 히로히토의 생일날을 기념하기 위해 '소화의 날'을 복원키로 했다고 한다. 전시의 '고쿠타이' 체제로 돌아가겠다는 말인가. 이런데서 과거 일본의 광기마저 느껴진다. '아시아의 푸들' 고이즈미 총리부터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동아시아가 평안해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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