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동산을 찾았더니 벌써 지는 꽃들이 많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벚꽃은 무심코 스치는 바람을 감당하지 못해 가는 숨결로 떨며 공중에 흩어진다. 참으로 옛 사람들이 말하던 공화(空華)이다.
좀 늦게 피어난 자목련도 따뜻해진 햇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처량한 이의 눈물처럼 애처로이 흰 속살 보이며 마른 땅 바닥에 제 몸을 처박고 있다. 긴 겨울에 비해 너무 짧은 영화이다 싶어 한참이나 바위 위에 앉아서 감정을 추슬렀다.
인생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네 인생 또한 저 지는 꽃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거늘…. 그렇다면 우리는 이 찰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을 잘 살려면, 첫째 현실을 자각하며 직시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내 주소지는 어디인가를 먼저 자각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의식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기인생 직무유기'다. 예를 들어 가족의 구성원으로 있는 이상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위치와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나름의 할 일을 다하며 그 마땅한 자리에 있어줘야 한다. 삶이 현실 직시와 자각에 기인하지 않으면 전도몽상(顚倒夢想) 즉 뒤집힌 꿈 같은 세상이 되고 만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여실(如實)하게 드러내어 관조하는 삶은 인생 자체가 언제나 상큼하고 신선하다.
둘째 순간순간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인생은 한순간도 자기 것이 아님이 없다. 생명유지의 단초인 숨 쉬는 일부터 그렇다. 숨을 쉬는 데는 가타부타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저 숨을 쉴 뿐이지 다른 목적은 전제되지 않는다. 숨 쉬는 자체가 큰 의미이며 재미인 것이다.
직장생활 또한 그렇다. 직장생활을 돈을 벌기 위함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은 돈의 노예이지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못된다. 주인공은 돈 따위에 신경 쓰기보다는 하는 일 자체에 신성성을 부여한다.
현재적 삶, 당념(當念)의 고귀함이 직업관에 살아있지 않으면 억지로 하는 작위(作爲)가 되어 일에 끌려다니는 추한 모습이 되고 만다.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은 순간의 업무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킨다. 일과 내가 하나 되는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재미가 한량없이 크다.
셋째는 인연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현재 나의 좌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날줄과 씨줄의 만남이 이루어낸 필연의 조화이며 결과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놓인 그 어떤 것도 나 아닌 것이 없으며 무가치한 것은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산야에 핀 들꽃 한 송이라도 일단 나의 오감(五感)에 잡히는 순간부터 그것은 나의 꽃이요. 나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인연법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경거망동하거나 배은망덕할 수 없다.
그것이 수직적이든 평면적이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연들은 귀찮은 대상이 아니라 나를 나 되도록 하고 나를 성장시켜주는 장엄물이다. 내 삶의 진정한 가치는 나와 인연된 사람들, 이웃들과 함께할 때 더욱 빛나며 풍요로울 수 있다.
넷째 원(願)을 세워야 한다. 원이 없는 사람은 의지 없는 바윗덩어리, 나무토막과 같다. 산송장일 뿐이다. 원은 인생의 목표이며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원과 욕심은 그 개념이 다르다. 불교에서는 그 목표와 희망이 개인적'소아적일 때 욕심이라 하고, 전체적'우주적일 때 원이라고 한다.
원이 있는 사람은 그 인생의 빛깔이 다르다. 매사 긍정적이며 활기에 차 있다. 그리고 그 마음씀도 따뜻하며 늘 이웃들의 칭찬을 받는다. '전체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는 대아적(大我的) 인생관과 이웃이 아프니 나도 아프고 이웃이 기쁘니 나도 기쁜 불이(不二)의 소신은 곧 사랑이며 자비이다. 세상의 빛이 되고 귀감이 되는 사람은 그 삶의 스케일이 커서 자기 집착과 욕심을 떠나 있다. 인생을 잘 살려면 원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우학 영남불교대학'관음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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