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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자들의 집 "사회적 냉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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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생활이 넉넉하거나 큰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사람 냉대나 기피 등은 없습니다. 사회에서 사람 대접받고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김천시 어모면 동좌리의 조그마한 농가주택 대문엔 '갱생복지 믿음의 집'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10여 년 전 빈집을 수리한 곳이라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이곳엔 30여 명의 사람들이 적(籍)을 두고 산다. 대부분 청송감호소를 거친 출소자들. 이들의 평균 기록들은 거의 비슷하다. 나이 60세, 전과 10범, 교도소 생활 20년 등. 이것 말고도 가족, 친인척들로부터 외면받아 오갈 데가 없다는 것, 가진 돈이나 기술이 없다는 점 등 대부분은 동병상련의 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회적 냉대나 기피가 없고 대화를 나눠도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편하다.

그동안 이 집을 거쳐 간 출소자들은 120여 명. 대부분 수감 생활 중 기독교 신앙으로 맺은 사이. 이중 70~80명은 결혼과 직장생활 등으로 분가, 사회품에 안겼고 40~50명은 갱생에 실패, 지금도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다. 이 집 살림은 박영고(52)·김영희(48)씨 부부가 꾸려가고 있다. 출소자들에게 박씨 부부는 정신적인 가장인 셈.

이 집에서 '소장'으로 불리는 박씨는 20세 때 교도소를 처음 갔다. 전과 5범으로 19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지난 1992년 청송감호소 출소 후 노동일 등으로 억척 삶을 살아온 그는 청주의 한 제지공장 도움으로 200만 원 어치의 화장지를 외상으로 받아 장사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돼 지금도 트럭에 화장지를 싣고 다니며 장사한다.

이때 오갈 데 없는 출소자들과 장사를 하며 함께 살기 시작하다 차츰 식구가 늘었고 1995년 한 독지가 도움으로 현재 집을 무료로 임대받아 지금껏 살고 있다. 7년 전 뒤늦게 결혼한 박씨는 부인에게 늘 미안하다. 처음 5명뿐이던 식구들이 늘어났고 그들의 식사, 빨래 등 뒷바라지가 고스란히 부인 몫이기 때문. 형제 같은 식구들 뒷바라지, 빡빡한 살림살이에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다 보니 자식 낳는 것도 포기했다.

대신 김천 어모면과 농소면의 초교 6학년인 소녀가장 2명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그 전에 돌봤던 소년가장 2명은 이미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했다.

현재 함께 사는 30여 명 출소자들은 모두 화장지 장사를 한다. 그냥 노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전국을 돌며 화장지를 팔아 얻는 월 순수익은 1천만 원 정도. 한 사람씩 나누면 30만~40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요즘 장사가 안 돼 장갑 등 온갖 잡동사니를 판다. 그러나 착실한 생활로 사회로 복귀할 경우 박씨는 여러 형제들과 힘을 모아 사글세 방 하나와 간단한 살림살이는 늘 마련해 줬다. 70~80여 명이 그렇게 사회의 품에 안겼다.

이들에겐 정신적인 지주가 한 사람 있다. 오영희(72) 목사다. 현재 경기도 안양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선교 목사로 일하는 그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교도소 전도활동을 할 때. 그 뒤 그는 정기적으로 이들의 갱생에 도움을 줬고 이 집을 '갱생복지 믿음의 집'이란 명칭을 붙여 교회가 인가한 집으로 만들었다. 임순용(68·김천시 부곡동)씨를 비롯해 말 없이 이들을 돕는 독지가들도 여럿 있다. 지난 28일엔 한국휴게실 경북도지회(회장 조규식) 시·군 회원들이 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화장지를 사 주기로 했다.

'소장' 박씨는 "마지막 생을 착하게 살아보자며 열심히 살지만 생활이 힘에 부치고 벅찰 때가 너무 많다. 사회적 냉대와 기피는 참기 힘든 어려움이며 함께 살다 갱생에 실패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이런 영향을 받는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나 그는 "출소자 갱생을 위한 시설들이 정부 인가시설이 안되는 점은 빨리 시정돼야 할 부분"이라 지적하며 "주위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054-431-1539)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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