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우리 나라가 이웃에 있는 큰 나라한테 쥐여살 때 이야기야. 한번은 이웃 나라에서 얼토당토 않은 걸 가져오라 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저희 나라 땅을 둘러칠 바람막이 병풍하고 두만강 물을 퍼담을 항아리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거든. 병풍은 저희 나라 땅을 뺑뺑 돌아가며 다 둘러치면 딱 맞도록 하고, 항아리는 두만강 물을 다 퍼담으면 꽉 차도록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그러더란 말이지. 세상에 그런 엄청난 걸 어떻게 만들어?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어.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서 궁리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이 난 거야.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뾰족한 수가 나야 말이지. 글공부를 많이 해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다 모여서 밤낮으로 의논을 해 봐도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거든.
이래서 참 걱정이 늘어졌는데, 이 때 성밖에 부모도 없이 남의 집 머슴사는 아이가 하나 있었어. 이 아이가 소문을 듣고서는 임금 사는 대궐을 떡하니 찾아갔네.
"임금님, 그 일이라면 아무 염려 마시고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네게 무슨 방도가 있느냐?"
"예, 있다뿐이겠습니까?"
"그럼 그 병풍이랑 항아리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 주랴?"
"그런 것 다 필요 없으니 자 한 개하고 사발 한 개만 주십시오."
임금이 자하고 사발을 구해 주니까, 이 아이가 그걸 들고 이웃 나라로 갔어. 그 나라 임금이 가만히 보니까 뭐 조그마한 아이가 꾀죄죄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손에 들고 왔다는 것이 기껏 자 한 개하고 사발 하나거든. 그러니 단박에 얕잡아보고 마구 야단을 치는 거야.
"우리 나라 땅을 둘러칠 바람막이 병풍하고 두만강 물을 퍼담을 항아리를 만들어 가지고 오랬더니, 조그만 아이놈이 겁도 없이 그까짓 것을 들고 왔느냐?"
그래도 이 아이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태연하게 받아넘겼어.
"병풍이랑 항아리를 만들려면 먼저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자하고 사발을 떡 내놓으면서,
"이 자로 이 나라 땅 둘레가 몇 자나 되는지 재어 주십시오. 그래야 그만한 병풍을 만들 것 아닙니까? 또, 이 사발로 두만강 물을 퍼서 몇 사발이나 되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그래야 그만한 항아리를 만들 것 아닙니까?"
이랬지. 그러니까 뭐 더 할 말이 있나? 이치에 딱딱 맞는 말인데 뭘. 그런데 저희 나라 그 큰 땅덩어리를 어찌 자로 다 재고, 두만강 그 많은 물을 어찌 다 사발로 푸겠어? 도저히 못 하겠으니까 그만 나가떨어졌지.
"아이고, 됐다. 병풍이고 항아리고 다 필요 없으니 그냥 돌아가거라."
이렇게 해서 이 아이가 나랏일을 보기좋게 풀어내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거야. 돌아와서는 어떻게 됐느냐고? 그야 잘 살았지. 병도 없고 탈도 없이 오래오래 잘 살았더란다.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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