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남편이 집에 오면 때렸어요. 막대기로 머리에'''. 피 많이 났어요. 그 친구가 '나 여기 못살아. 여기 한국에서 못 살아. 나 필리핀 가요.''''" 한 케이블 TV 화면에 비친 필리핀 출신 여성은 함께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이주해 온 친구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겪는 아픔을 털어놓았다. 국제결혼이 급증하는 요즘,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행복한 둥지를 가꾸는 커플들도 많지만 상당수 외국인 아내들은 이처럼 심각한 가정폭력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 충격을 안겨 준다.
◇ 보건복지부가 14일 발표한 '여성 결혼 이민자의 생활 실태와 보건복지 욕구 조사'는 국제 결혼 이주 여성에 관한 최초의 전국 단위 조사다. 여기 나타난 그녀들의 한국살이는 한마디로 "이럴 수가…."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절반 이상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극빈층 생활을 하고 있다. 굶은 적이 있다는 사람도 100명 중 열대여섯 명이나 되고, 아이가 아파도 병원 치료를 포기해야 할 정도다. 4명 중 1명꼴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더구나 3명 중 1명꼴로 남편의 언어폭력과 구타'변태적 성행위 강요까지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그저 북어 두드려 맞듯 얻어맞고, 가슴을 찢어대는 욕설에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다. 한국 사정에 어둡고 언어 소통조차 쉽지 않은 그들에겐 비상구가 없는 것이다.
◇ 과거에 국제결혼 커플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국제결혼이 그만큼 흔해진 때문이다. 2004년의 경우 국내 총 결혼(31만944건)의 11.4%(3만5천447건)나 된다. 2000년(1만2천219건)에 비해 무려 3배가량이나 늘어났다. 현재 국제 결혼 이주 여성은 모두 12만여 명. 이들 중엔 남편 얼굴을 한 번도 못본 채 시집온 사람만도 9.4%나 된다.
◇ 그녀들의 출신국은 중국-일본-필리핀-베트남-태국-몽골-러시아 순으로 많다. 일본 외엔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들이다. 과문 탓인지 모르나 한국 남성과 결혼한 구미(歐美) 국가 출신 여성들이 심각한 가난과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주 여성의 실태는 우리 사회에 나타난 또 하나 그늘진 소외 지대다. 물 설고 낯선 이 땅에 남편 한 사람만 믿고 시집온 수많은 '한국댁'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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