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이양증' 투병 이준희군

"빨리 나아 훌륭한 의사 되고파요"

"아파요. 할아버지 너무 아파요. 제발 살살…".

18일 상주시 성동동 이봉우(59)씨 집. 막 학교에서 돌아 온 이씨의 손자 준희(11·성동초교 4년)는 입술을 꼭 깨물고 힘겨워 하고 있었다.

준희는 이골이 난 듯 치료사 선생님의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꼼지락 거렸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30여분 간의 고통스런 재활운동을 끝내고 할아버지가 준희를 들어 올리자 해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할머니 김순옥(52)씨도 차마 지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준희는 두 다리 근육이 오그라 들어 다리가 펴지지 않는다. 서지도 걷지도 못한다. 팔 근육도 이상이 생겨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방에서만 지내야 한다.

이제 일상이 돼 버린 이들의 고통은 4년 전부터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 아프던 준희가 초등학교 입학 때 갑자기 쓰러졌다. 다리와 온 몸의 근육이 자라지 않고 오그라 들어가는 '근이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신의 근육이 조금씩 제기능을 잃어가면서 목숨마저 앗아가 버리는 무서운 희귀병이다.

준희는 힘에 부치는 할아버지·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오간다. 그나마 학교 측이 준희 교실을 2층에서 1층으로 옮겨주고 지난 6월에는 준희의 딱한 사정을 들은 성동초등어머니회(회장 최희)와 새세대육영회 상주지회(회장 강정임)가 준희 돕기 일일찻집을 열어 전동 휠체어를 마련해 주었다.

투병생활 4년. 말이 투병생활이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보지 못했다. 상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나온 재활 치료사로부터 마사지를 받고 성모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를 맞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준희는 진통제 없이는 잠도 못잘 정도로 악화됐다. 혀와 목 근육으로도 병이 진행돼 밥을 넘기지 못할 정도다.

상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 장재현 물리치료사는 "병 진행상태를 보면 호흡기관 근육까지 마비증세가 와 숨을 쉬지 못 하는 상황이 언제 올지 모른다"며 "할아버지가 짬만 나면 준희에게 숨을 크게 내쉬고 마시는 운동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준희의 병이 불치는 아니다. 근육발달 정도에 맞춰 평생동안 근육을 늘려 주는 수술을 몇 차례 하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수천만 원 넘는 수술비. 준희 엄마는 동생 찬희(6살)가 첫 돌 되던 해 집을 나갔고 이듬해 아버지도 가출했다. 쌓인 빚 때문에 집이 언제 경매에 넘어갈 지도 모른다.

생활비는 이씨의 고엽제 후유증 보상금 24만 원과 준희의 장애수당 6만 원, 상주시에서 지급되는 생계유지비 25만 원 등 55만 원이 전부. 준희의 수술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할아버지도 1971년 베트남전 때 얻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지만 아픈 손자 때문에 내색도 할 수 없다. 피부가 짓무르고 벗겨진다.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돼 자손들에게 병이 생겼다는 생각에 더 가슴이 찢어진다. 준희의 아버지도 척추에 이상이 생기고 다리 근육이 마비되는 질병을 앓았다. 동생 찬희도 얼마 전부터 다리 근육이 돌덩이같이 단단해 지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준희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방바닥과 벽에 부딪히면서 아파하는 걸 보면서도 아무런 치료를 해 주지 못해 가슴이 아파요. 잠도 못자는 준희의 고통을 없애 줄 길은 없을까요." 할머니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준희는 할머니 손을 더 힘껏 잡는다. "하루 빨리 나아서 훌륭한 의사가 될게요"라고 말하는 준희의 모습이 안쓰럽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준희 연락처 054)536-0221.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사진: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히려 하자 준희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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