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물 위에 진흙소가 달빛을 밭간다

구름 속 나무말이 풍광(風光)을 고른다

위음(威音)의 옛곡조 허공 저 뼉다귀라

외로운 학(鶴)의 소리 하나 하늘 밖에 길게 간다.

소요태능(消遙太能·1562~1649) '종문곡'(宗門曲)

조선조 대선사의 잘 알려진 선시입니다. 선시는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언어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리(언어)나 관념(언어)을 넘어서면 시적으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흙소가 물 위에서 달빛을 밭갈고, 나무말이 구름 속에서 풍광을 고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논리를 버리고 이미지를 그대로 보면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설령 진흙소(泥牛), 나무말(木馬), 위음(威音王) 등 불경에 나오는 얘기를 잘 몰라도 익숙한 관념의 벽을 깨뜨리면 그 너머 밝은 빛이 느껴집니다. 어린이의 상상력보다 어른들의 그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바로 언어(논리)에 묶여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시는 언어가 끝나는 데에서 출발한다지 않습니까?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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