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뜨겠다 어서 일어나 소 띠끼러 가거라' '학교 파하면 핑 와서 소깔 비어라이 길목에서 놀았다만 봐라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놓을 팅게'
김남주 시인의 시 '아버지'에 나오는 전남 해남지방의 방언 담화에는 당대 역사성의 물결무늬를 찾아낼 수 있다. 아버지의 당시 표정과 느낌, 정감과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방언을 사용한 담화의 기능과 효용성의 중요함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마 유치환의 시에 등장하는 '항가새꽃'은 엉겅퀴꽃이다. 엉겅퀴의 경남 충무지역 방언이 '황가새'인 것에서 알아냈다. 엉겅퀴꽃은 또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뽑아낸 못을 묻은 장소에서 피어난 성화(聖花)이기도 하다. 청마의 시 '깨우침'에 나오는 '저 먼 동방의 항가새꽃빛 새벽을 부르며'란 대목에서 '항가새꽃빛'이라는 시어가 느닷없이 나오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시에서 어휘 하나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예이다.
'달 아래 # 멋업시 섯든 그 여자', '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의 시어는 산 높고 골 깊은 평안도 방언을 기층으로 하고 있다. 때로는 사무침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우리 정서에 당겨놓은 소월의 시는 평안도 토박이의 가림없는 자연 언어의 물결무늬로 빚어낸 것들이다.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이육사의 시도 경상도 방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작품 해석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상화의 시도 대구 방언을 모르고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시어를 잘못된 표준어로 옮겨 본래의 시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맛깔마저 왜곡시킨 오류들이 너무 많다.
경북대 국문과 이상규 교수가 출간한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경북대출판부 펴냄)은 다소 도발적인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표준어 중심 사회에서 시인들이 시에 방언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표준어가 아닌 방언 역시 소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그래서 시에 나타나는 방언은 모국어를 더욱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뒤주간에 든 우리들의 양식과도 같다고 한다.
"서울말이 중심이 되는 표준어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시인들의 작품 속에 서성거리고 있는 지역 방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난해한 시어를 쉽게 풀어 보려고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이 교수는 농경시대의 문화유산인 방언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남과 북의 이념적 대립으로 묻어 두었던 우리 민족의 결 고운 언어유산들도 문화유산이란 측면에서 수집·보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향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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