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CEO 탐구-(3)위기 돌파 비결

회사 힘들때 직원·고객 배신않은 게 전화위복

23전23승의 불패(不敗)신화를 이룬 이순신 장군. 솔선수범형 인간적 리더십과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장군을 많은 CEO(최고경영자)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다. 특히 12척의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은 장군의 위기돌파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병들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려고 회피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란 정신으로 전장에 나가 위기를 빛나는 승리로 바꿨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기업도 부침을 거듭하기 마련. 위기가 닥쳐왔을 때 CEO와 직원들이 한 데 뭉쳐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기업은 다시 탄탄대로를 달리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위기에 닥쳤을 때 CEO의 능력과 그 기업의 생존력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 '매미'가 가져온 위기와 교훈

문을 연 지 3년 만에 전국 최고 패션몰로 올라선 모다아울렛의 최재원 대표. 패션몰을 열기까지 시련도 많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태풍 '매미'가 몰고 왔다. 2003년 9월 쏟아붓는 비에다 공단 배수펌프장 고장까지 맞물려 건물 하단부가 물에 잠겼다. 전산·공조시스템과 의류 등이 침수돼 62억 원의 피해를 봤다. 그러나 모든 직원들이 1주일 동안 철야근무를 하고, 입점 브랜드들이 물건을 계속 공급해 준 덕분에 모다는 정상궤도를 되찾았다.

"모든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자세와 교훈을 저와 직원 모두가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임직원 모두가 하나로 결속되는 기회도 됐지요." 최 대표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남들과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포항의 철강업체 (주)융진 박일동 대표는 사업 첫 번째 고비로 컨테이너를 고수하느냐, 조선업으로 변경하느냐를 결정할 때를 꼽았다. "직원들이 조선업은 적자업종이라서 안된다고 반대해 결국 공장장 이하 간부 몇 명이 퇴사한 뒤에야 조선업으로 변경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IMF 사태 당시 치솟은 이자율과 수금 지연, 관련 업체들의 부도, 그리고 또 현장에서 안전사고까지 발생한 때였다.

박 대표는 "고객들이 강해져야만 제가 강해질 수 있다는 열정을 갖고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노력했다"며 "철저한 심사분석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개인이 아닌 조직이 일을 하는 방안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얘기했다.

◇ "불철주야 일에 매달렸지요."

내실있는 금융회사로 평가받는 유니온상호저축은행을 이끌고 있는 박판희 대표.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이후 어려운 영업환경에서도 기반을 다지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불철주야 노력한 덕분에 영업이익을 많이 실현했어요. 하지만 계약이전손실금을 지원하기로 한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이 금리 하락으로 당초 지원 예정액보다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애써 올린 영업이익을 손실분 보전에 돌려야 할 때 참 어려웠습니다." 지난 5년 동안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토로다.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박 대표는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무엇보다 정성을 기울였다. "은행의 행훈처럼 정직과 창의, 근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지요. 고객들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기업의 발전을 위해 CEO나 직원들이 정직하고 근면한 자세로 노력한 덕분에 급변하는 환경에 잘 대처해 지금과 같은 내실있는 금융회사로 발돋움했다고 봅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생산담당 함병철 이사는 1996년 고임금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으로의 비디오 공장 이전이 거론될 때 힘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구미 비디오 공장은 눈물겨운 노력과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한 뒤 줄곧 좋은 성과를 내오고 있다. 함 이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향한 도전정신을 갖는 것이 위기극복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 "지금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구정모 대구백화점 대표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기업구조개선작업을 꼽았다.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에겐 아직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재현된다고 하더라도 CEO로서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련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된 용기, 그리고 자신감이 대구에 진출한 롯데백화점에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도 밝혔다. "다가오는 경영환경은 더욱 불투명하고 불확실할 것"이라며 "어려운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 창업 100주년의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현한근 문경여객자동차(주) 대표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 "1995년 대표이사 취임 후 인근 지역의 시내버스 2개 회사를 양수해 노선 경쟁을 해소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코자 했습니다. 자체 차고지와 정비시설, 사무실, 주유소 등에 투자했으나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고금리에 지역경기 위축으로 인한 승객 감소에 봉착했어요." 위기를 돌파한 비결은 '인간위주 경영'. 평소 준비해온 노선 정밀조사표에 의해 차량 20%를 감소하면서도 주민 편의를 위해 실질노선 감소를 최소화하고, 운행거리를 늘려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는 것. 당시 유가가 지금의 40% 수준이었던 것도 '천우신조'였다.

◇ 노사가 한 마음으로 '위기돌파'

보국건설 남병주 대표 역시 1997년 이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전기공사업이 주업종이었는데 시공 중인 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자금 부족에 직면했다는 것. 보국의 위기탈출은 노사화합이 밑거름이 됐다. 남 대표는 "'불황이라고 모든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며 잘 찾아보면 분명 탈출구가 있을 것이고,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위로, 격려했다"며 "이런 뜻을 직원들이 잘 이해해줘 직원들 스스로 봉급의 25%를 자진해서 삭감하는 애사심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고 얘기했다.

철강재 포장회사 삼정피앤에이 정용희 대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려면 무엇보다도 노사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신뢰와 화합의 신노사문화 정착에 가장 역점을 두고, 노동조합 간부들을 일일이 만나 적극 설득해 나갔다. 그 결과 2002년 5월 회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임·단협 동시 무교섭 타결'을 이룩했고, 올해로 4년 연속 임금 무교섭을 실현했다. "끊임 없는 연구와 모든 직원들이 열심히 발로 뛴 결과 괄목할 만한 매출액 증대를 이뤘다"는 게 정 대표의 결론.

◇ 순간순간이 위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경영론을 갖고 있는 김천 한일인더스트리(주) 진광환 대표는 믿었던 직원의 배신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 일을 계기로 배신할 수 없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CEO가 해야 할 역할이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더불어 인재관리의 중요성과 함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진리도 얻게 됐습니다." 진 대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것은 인간중심의 경영"이라며 "자연의 섭리을 이해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경영이 중요하다"고 했다.

구봉정보기술 박무희 대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사고를 가져야 하는 IT 업종 속성상 항상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개발하는 아이템의 변화, 판매 방법 변화 등에 적응하는 것이 스스로만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란 것.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되, 한 발 더 앞서 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며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한 회사의 틀을 고객 만족에 맞추려 애쓰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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