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학교가 즐거우려면

토요일 오후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가면 자주 만나는 학생들이 있다. 큼지막한 카세트를 틀어놓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혹은 여럿이서 춤 연습을 한다. 누가 보건 말건 춤 출 때만은 진지한 표정들. 호흡이 맞으면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지만 한 명이라도 동작이 틀리면 리더로 보이는 학생이 사정없이 호통을 친다. 또래끼리인데도 말없이 수긍하고 다시 연습에 빠져드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춤이라면 왠지 불량스러운 느낌이 드는 구세대의 교육을 받은 탓일까 싶기도 했지만, 무엇이 저들을 저리 열중하게 만드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런데 학교의 특기'적성 교육이나 방과 후 활동, 동아리 등을 취재가면 어김없이 만나는 것이 춤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거기서 보이는 표정은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진지함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문화센터에서 만난 한 댄스 강사는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주목받을 수 있는 걸 배우기 좋아한다"며 "대학 캠퍼스나 놀이터 등에서 춤 연습 하는 아이들을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참을 생각해볼 만한 화두였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학교는 학생들이 꿈을 키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땀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곳이다. 엄격한 가르침과 배움이 있으며, 이를 위해 잘 짜인 과정과 전체를 위한 규칙이 있는 곳이다. 아무리 사교육에 의지한다고 해도 아직은 누구도 존재 의의와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학교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틀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한창 제멋대로일 나이에 시간과 공간을 제약하고, 심지어 머리카락 길이까지 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른들에게 학교는 가장 늦게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야 마땅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가장 먼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으면 아니 적당히라도 따라가 줬으면 하는 곳이 아닐까.

이번 여름방학 동안은 시기적 특성상 특기'적성교육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많이 취재했다. 그 과정 속에 있는 학생들은 학기 중에 보던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스스로 쏟아내는 땀과 열기는 '비로소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학교에서 찾았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학교는 즐거움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 정책에 환호하고 기대했다가 실망과 좌절만 안은 적이 있다. 그래도 대입 제도와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뿐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다는 기억이 또렷하다. 이제 또다시 열 개가 넘는 과목의 학교 시험과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책상 앞에 쪼그린 학생들을 보면 그때의 실패를 성공으로 돌릴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