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3천95명의 '친일인사' 명단에는 일반인들도 익숙한 역사적 인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는 '을사 5적'과 같은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합의가 이뤄진 인사도 있지만 그동안 애국인사로 알려져 있던 인물도 꽤 있어 국민에게 새로운 역사인식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지만 '친일'의 정의를 놓고 치열한 논쟁도 예상된다. 다음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분야별 주요 인물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행적.
◇수작자(受爵者) ▲이완용(李完用) = 1905년 을사조약 시 내각총리대신, 1910년 한일합방 공로로훈1등 백작, 1921년 중추원 고문 겸 부의장, 1920년 후작 승급 ▲송병준(宋秉畯) = 일진회 조직, 1910년 훈1등 자작과 매국공채 10만원, 아들 종헌 습작. 중추원 고문, 경기도 참사 1920년 백작으로 승급, 사위 구연수 명성황후시해에 가담 ▲조중응(趙重應) = 명성황후시해 가담. 고종 퇴위 강요. 1909년 친일지 '법정신문' 발간, 1910-1919년 중추원고문, 1916년 대정친목회 및 한성부민회 회장 일훈1등 대욱장 ◇제국의회 ▲박영효(朴泳孝) = 1910년 후작, 1911년 조선귀족회장, 1921년 조선인산업대회회장, 1939년 중추원 부의장, 조선사편수회 고문 정2위 훈1등 훈장 ◇친일관료 출신 역대장관 ▲현석호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화순군수, 해방 후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김영선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진도군수, 해방 후 내무부 장관, 통일원장관, 주일대사 ▲임문환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용인군수, 조선총독부 식산국 사무관, 조선총독부 광공국 서기관·민정관, 해방 후 농림부 장관 ▲이해익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개성부윤, 해방 후 경기도지사, 농림부 장관 ▲전예용 = 일본고등문관 행정과, 광주군수, 총독부 사회과장, 황해 산업부 농업과장. 해방 후 한국은행 총재, 부흥부 장관, 건설부 장관 ▲김태동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무주군수, 고창군수, 조선총독부 전 매국 총무과 사무관, 해방 후 보건사회부 장관 ▲홍헌표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강서군수, 평남도 이사관, 함북도 사무관,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함북 농상부장, 해방 후 체신부 장관, 성균관대 부총장 ▲김홍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행정과, 양덕군수, 경기부천군수, 해방 후 충남도시자, 무임소장관, 체신부장관 ◇군장교 ▲신태영 = 일본육사, 일본군 장교, 해방 후 국방부장관 ▲김정렬 = 일본육사, 전투기 비행중장, 해방 후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국무총리 ▲이종찬 = 일본육사, 일본군 장교, 해방 후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유재흥 = 일본육사, 일본군 장교, 해방 후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대통령안보담당 특별보좌관 ▲정일권 = 일본육사, 만주군 헌병대위, 해방 후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장관 ▲임충식 = 지원병, 일본군 장교, 간도특설대, 해방 후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차장, 합참의장 ▲백선엽 = 만주 봉천군관학교, 간도특설대, 해방 후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판검사 ▲민복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해방 후 대검찰총장, 대법원판사, 법무부장관, 대법원장 ▲홍진기 = 경성지법 사법관시보, 전주지법 판사, 해방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장관 ▲이 호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고검 검사 해방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김익진 = 충주·강원·평양·함흥지법 판사, 평양복심법원 판사, 해방 후 대법관, 검찰청장 ◇종교 ▲박희도(朴熙道) = 친일잡지 동양지광사 사장,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참사, 배영동지회 평의원, 시중회 발기인 ▲정인과(鄭仁果·창씨명 德川仁果) = 1925년 주일학교연합회 협동총무.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 결성.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9년 반민특위 체포. ▲이회광(李晦光) = 불교계 '이완용', 1912년 조선선교양종각본산 주지회의원원장, 1915년 불교진흥회 조직, 1919년 일본 임제종과 합병 획책 ▲권상로(權相老·창씨명 安東相老) = 1937년 '선각자로서'라는 시국강연, 1940년 국민총력연맹 참사, 1943년 '임정의 조선불교' 간행, 해방후 불교대학 학장, 1962년 문화훈장 서훈 ▲노기남(盧基南) =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경성교구연맹 이사, 1940년 국민총력 경성교구연맹 이사장, 1943년 전선종교단체협의회 천주교회 대표위원, 해방후 이승만을 도와 단정 수립 ▲최 린(崔麟·창씨명 佳山麟) : 33인의 한사람으로서 변절, 천도교를 분열시켜 자치운동 도모, 1934년 중추원 칙임참의, 1937년 매일신보 사장 취임,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회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회장,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 한국전쟁때 납북
◇문학계 ▲이광수(李光洙·창씨명 香山光郞) = 1922년 민족개조론 발표,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 1942년 대동아문학자대회 참석, 수많은 '친일 글'을 남김,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 ▲김동환(金東煥·창씨명 白山靑樹) = 1929년 월간 삼천리 창간, 1941년 지원병보급 혈전대강연회 연사로 참석, 1941년 임정대책협의회 발족 주도,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 이라는 전쟁독려시 씀(1943.11.6),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돼 공민권정지 처벌받음 ▲모윤숙(毛允淑) = 1940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에서 친일 강연, 1941년조선교화단체 연합회 간부, 1942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사, 광복후 단정 수립에 큰 공을 세웠고 예술원상, 국문훈장 모란장, 삼일문화상 수여 ▲최재서(崔載瑞·창씨명 石田耕造) = 1941년 친일잡지'국민문학' 주간, 1943년조선문인보국회 이사, '받들어 모시는 문학' 등의 글에서 천황숭배를 주장 ▲유진오(兪鎭午) = 1939년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1년 총력연맹 문화부위원1942∼1943년 대동아문학자대회조선대표,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평위원, 광복 후제헌국회헌법 기초위원, 고려대 총장.
▲주요한(朱燿翰·창씨명 松村紘一) = 1934년 조선일보 전무이사, 1937년 흥사단사건시 전향성명 발표,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참여, 광복 후 민주당 민의원, 4·19후 부흥부,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1979년 사망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음악계 ▲이종태(李鍾泰·창씨명 鈴木貴一郞) = 1937년 매일신보 주최 '애국가요의 밤' 에서 '총후' 작곡, 북지위문단원으로 활약, 후생악단 전무이사 ▲현제명(玄濟明) = 1937년 조선문예회 회원, 1938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경성지부 간사, 1944년 경성후생실내악단 이사장, 조선음악협회 이사, 광복 후 미군정장관을 명예회장으로 한 고려교향악단 창설, 서울대 예술학부 음악학부장 ▲홍난파(洪蘭坡·창씨명 森川潤) = 1939년 홍난파 지휘로 애국가곡집 공연이 방송됨,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지나사변과 음악'에서 성전 독려, 1941년 조선음악협회 평의원.
▲박시춘 = 1943년 '조선지원병 실시 기념음반' 중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안해', '목단강 편지'를 작곡 ▲남인수 = 조선군 보도국 제작 '그대와 나'(내선일체 주제가)와 '혈서 지원' , '이천오백만 감격' 등 친일 노래를 부름 ▲김기수(金琪洙·창씨명 光山哲三) = 1940년 11월 9일 일본기원 2천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회에서 이왕직 아악부가 연주한 '皇化萬年之曲' 작곡, 이 곡은 이능화의 1939년 한문시에 곡을 붙여 일본기원 2천600년 기념 공모 당선작, 국내 최초로 오선보로 작곡된 국악 창작 ◇미술계 ▲김경승(金景承) = 1939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졸업,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전람회에서 '여명' '제4반' 입선, 광복 후 충무공 이순신상(1953), 안중근상(1959) 등 조각 ▲김은호(金殷鎬·창씨명 鶴山殷鎬) = 1937년 이후 선전(鮮展) 참여작가. 1941년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 1937년 애국금차회 활동을 그린 '금차봉납도'를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 ▲김기창(金基昶) = 1940년 '선전' 추천작가, 1942년 반도총후미술전 추천작가, 1943년 매일신보의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와 1944년작 '총후병사'는 화필보국(畵筆輔國)의 증거 ▲이상범(李象範) = 1942∼1944년 반도총후미술전 일본화부 심사위원, 1944년 모던일본사가 친일작가를 위해 제정한 제5회 조선예술상 수상, 1940년 조선남화연맹전, 애국백인일수 전람회 등 국방헌금 마련 미술전에 빠짐없이 참여, 광복 후 홍익대 미대 교수, 문화훈장 대통령상(1962), 삼일문화상(1963) 수상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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