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성인의 90%는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치명적인 사고나 자연재해, 그리고 타인의 사망이나 심한 부상을 목격하는 것 같은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다고 한다. 최근 인류를 경각시킨 갖가지 자연재해의 기억은 아직도 원귀처럼 남아 있다. 누구도 이런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떠안게 된다. 이런 재난과 외상성 스트레스를 다루는 분야를 '재난정신의학'이라고 한다.
영화 '투모로우'는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다룬 재난영화다. 기상학자인 홀 박사는 남극에서 빙하를 탐사하던 중 곧 기상이변이 일어날 것을 감지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이것이 해류의 흐름을 바꿔, 결국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게 될 것이라고 보고한다. 얼마 후, 과거 빙하기에 풀을 뜯다가 냉동된 매머드를 감상하던 강 건너 불구경이 인류에게 고스란히 재현된다. 토네이도가 LA지역을 덮치고, 일본에서는 때아닌 우박으로 피해가 엄청나다. 지구의 북반구가 빙하로 덮이기 시작하는 징후들이 속출하자, 결국 미국 정부는 국민들을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대피령을 내린다. 자연재해 앞에 더욱 속수무책인 정부기관의 대처는 영화 속에서도 여전했다.
얼마 전 미국 동남부를 휩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삼켜버렸다.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수많은 시신들과 파괴된 건물, 물에 잠겨버린 캄캄한 도시가 을씨년스럽다. 이런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다른 사고와 달리 자연재해는 인간이 조정하기 어렵다는 불가항력적인 요소 때문에, 그 공포와 정신적인 충격은 훨씬 크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잘 놀라고 불안해 한다. 참상을 잊으려고 노력해보지만, 반복적으로 떠올라 재경험하듯이 파고든다. 화를 잘 내거나 자주 울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침묵을 원하기도 한다. 공포, 죄의식, 슬픔, 혼동 등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무덤덤해지려고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평소 즐기던 일에 흥미를 잃고 집중력이 저하되고, 지나치게 누군가에게 매달리기도 한다. 이런 반응은 사건을 겪은 희생자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문제다. 이런 반응들은 정상적인 것으로, 상당 기간 지속되다가 점차 감소한다. 그러나 만성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한편, 사람들을 남쪽으로 대피시킨 홀 박사는 뉴욕에 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북쪽으로 되돌아온다. 아들 샘은 친구들과 퀴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있었던 것이다. 빙하가 덮친 뉴욕에서 이들은 고립되었다. 혹한이라는 절대 상황에서 샘은 여자친구의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 이미 눈과 빙하로 뒤덮인 뉴욕에 도착한 홀 박사는 목숨을 걸고 아들을 구해낸다.
재난을 당한 사람의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사고를 막지 못한 무력감에 좌절감을 가지기도 하고 조바심이 늘어난다. 마치 자기가 겪는 것처럼 상상이 되어 고통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서로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죄의식을 가지거나 우울해지는 등 당사자와 유사한 감정을 겪으면서, 이런 공감대는 희생자를 도와주고 외로움을 덜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자연재해 수습 대책과 더불어 정신치료 보건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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