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서 다시 알몸으로

죽어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함민복(1962∼ ) '감나무'

한 그루 감나무가 살아온 지난 일 년 동안의 삶의 도정은 튼튼했습니다. 그 튼튼함의 비결은 감나무가 안으로 철저히 지켜온 내부적 삶의 규범과 질서 덕분이었지요. 항상 진지하고 사려 깊게 판단하는 자세는 철저한 절제와 자기응축으로 삶을 단련해 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만히 우리 주변을 지켜보노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함부로 세상을 더럽히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처럼 방종과 무질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반성할 줄 모르고 오직 교만으로 가득 찬 인간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저 감나무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늘 일러주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있지요.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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