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동료 연구원이 며칠 전부터 점심시간만 되면 따로 나가 밥을 먹고 들어오곤 했다. 그저 개인 약속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수능시험 치는 아들을 위해 점심시간 동안 파계사에 들러 기도를 하고 왔다고 한다. 물론 점심을 온전히 굶고서 말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식의 입장에서는 절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할 때면, 간접 체험을 통해 부모의 심정을 느껴보라고 학생들에게 '설탕포대 키우기' 실험을 숙제로 내주곤 한다. 실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3㎏짜리 설탕포대를 하나씩 사도록 한다. 이제 일주일 동안 그 설탕포대는 단순한 감미료가 아니라 자신이 돌보고 키워야 하는 아기가 되는 것이다. 실험의 방법 및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해진 시간(보통 아기 젖 먹이는 시간인 2, 3시간)마다 한 번씩 설탕포대를 안아주거나 쓰다듬거나 하는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실험기간 동안 어딜 가나 항상 데리고 다녀야 한다. 셋째, 잘 때는 항상 옆에 데리고 자야 한다. 넷째, 매일매일 설탕포대를 키우면서 느낀 점을 육아일기 형식으로 적도록 한 후 제출하도록 한다.
중량이 3㎏이니까 무게감도 신생아의 몸무게와 유사하다. 하지만 설탕 아기는 일반 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순하고 돌보기 쉽다. 설탕 아기는 울지도 않고, 목욕시킬 필요도 없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깜빡 잊어버리고 시간에 맞춰 젖을 안 준다고 해서 보채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이 끝난 후 대부분의 학생은 자기 옆에 돌봐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스럽고 자신의 생활이 얽매이는 것 같더라는 소감을 밝힌다. 실험을 통해 자신의 부모가 자기를 키우면서 얼마나 수고했을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많다. 설탕포대를 가방 속에 마구 넣고 다니다가 비닐이 찢어지는 바람에 설탕이 줄줄 새자, 반창고처럼 스카치테이프로 구멍을 막아놓고는 "내 실수 때문에 우리 아기가 아팠다. 내 마음도 너무 아프다."라고 육아일기에 써온 남학생도 있었다. 흔히 모성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실험을 통해 가장 많이 변하고 심적 충격을 받는 집단은 대개 남학생이었다. 진정한 모성은 아이를 직접 낳지 않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육아참여가 남성에게도 권장되는 이유다.
정일선(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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