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소해요, 깨끗해요...어르신표 참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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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은 적지만 일 재미는 정말 고소해요"

대구 달서구 감삼동 구병원 뒤쪽 주택가. 이 동네엔 지난달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골목길 한쪽에 '참기름집'이 생긴 것.

이 동네 사람들은 시장에나 있어야 할 참기름집이 동네 구석에 있는 것을 궁금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안을 살폈다. '궁금증 가득한 참기름집'은 이내 동네의 화제가 됐다. 칠순을 바라보는 어르신 3명이 운영하는 '실버 참기름집'이란 사실이 확인된 것. 동네 사람들은 이 가게 간판에 쓰인 '백세(百歲) 참기름집'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치고 있다.

▨어르신들 뭉치다

김재홍(68·대구 달서구 죽전동)·권재현(67·대구 달서구 용산동) 할아버지, 그리고 김군대(65·대구 남구 대명동) 할머니. 이들은 지난달 '뭉쳤다'.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자활 후견기관인 '대구 달서시니어클럽'에 나갔다가 알게 된 사이. 달서시니어클럽이 노인들의 여가 활용 및 수익 사업으로 참기름집 개설을 추진하자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들고 나섰다.

모집경쟁이 치열했다. 시니어클럽에 나오는 어르신 20여 명이 참기름집 근무를 희망하고 나섰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낙점된 어르신들은 이들 3명. 지난날의 경력, 현재 집안 상황 등이 반영됐다.김재홍 할아버지는 농업기반공사 부장 출신. 꼭 10년 전 정년퇴직했다. 기계를 워낙 잘 만져 참기름집 엔지니어로서 손색이 없다.김군대 할머니는 오랜 과일가게 장사 경력이 돋보였다. 참기름 가게를 일으킬 만하다는 것.

권재현 할아버지는 운전 경력이 워낙 오래돼 차량을 이용한 배달 및 수금 업무 전문가로 선택됐다. 3인(人) 3색(色). 이렇게 모인 '환상의 3인조'는 꼭 한 달 전 참기름집을 열었다. "참기름요? 처음 짜봐요. 하지만 뭐 그런 게 중요한가요? 열심히 배워서 하면 되죠. 열심히 했더니 금방 익숙해지던 걸요." (김재홍 할아버지)

▨바쁘다 바빠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는 솔직히 '파리를 날렸다'. 홍보가 안 된 탓이다. 그런데 개업 한 달이 넘은 요즘, 백세 참기름집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지난 한 달을 꼬박 팔아도 200병밖에 안 나갔는데, 이번 주 들어 벌써 100병 가까이 팔았다. 하루 평균 30병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깨 종류에 따라 5천 원 및 6천 원짜리로 분류, 2종류를 판다. 재료 원가가 워낙 많이 나가 이윤은 박한 편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하루 종일 일하면 50병을 만들 수 있다. 조금만 더 홍보가 되면 '전면 가동 체제'에 들어갈 계획이다. 요즘은 재고가 쌓일까봐 하루 30병 정도만 만든다.

이달 초 대형 슈퍼마켓을 납품처로 뚫어냈다. 대구 달서구 감삼동 드림시티 앞 OK할인마트.처음 납품 의뢰하러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비싸다는 이유에서였다.자꾸 설득했더니 슈퍼마켓 업주가 품질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OK 사인이 떨어졌다. 고소한 냄새부터 다른 제품과 다르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속이겠어요? 집에서 하는 것처럼 깨끗하게 만드니까 아주머니들은 딱 보면 알더군요. 품질이 좋다는 것을 말입니다." (김군대 할머니)

▨일하니까 좋아요

권재현 할아버지는 "이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손자·손녀들 과자값을 많이 줄 수 있겠다"고 했다. 이 나이에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산다는 것이 너무 즐겁다는 것.

"이 일을 시작하니까 아내가 제일 좋아해요. 사실 퇴직하고 나서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보니 아내에게 미안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할일이 드물고, 어디 갈 곳이 없다는 것,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죠? 겪어보면 알아요.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를." 김재홍 할아버지는 요즘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김군대 할머니는 대명동에서 감삼동까지 출근하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출근길이 1시간이다. 그래도 즐겁단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조금 힘에 부칠 때도 있어요.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신경도 쓰이고요. 하지만 출근할 곳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남편 없이 막내딸과 사는 김군대 할머니는 참기름집이 내 집 같다고 좋아했다.

어르신들은 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다. 내년 설엔 참기름 선물세트를 만들어 제대로 한번 팔아보겠다는 것. '백세 참기름'이란 이름이 내년엔 대구·경북지역에 확 퍼질 예정이라고 어르신들은 '큰소리'쳤다.

어르신들의 참기름 사업을 도와주고 있는 달서시니어클럽 지영배(29) 사업팀장은 "이 추세로 가면 내년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엔 3명의 어르신을 추가로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053)593-8310.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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