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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한민족의 노래이고, 한민족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민족이다." 한민족 역사의 현장에서 노래 '아리랑'은 언제나 한민족과 함께했다. 분단된 남북이 모인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아리랑'을 목놓아 부르며 민족 단합의 장을 만들었다.

'특선 MBC 다큐멘터리-누가 아리랑 고개를 넘었나'(27일 밤 11시)는 민족의 대표 노래 '아리랑' 속에 녹아 있는 질곡과 격동의 시대정신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해 본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상징이자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경기아리랑·정선아리랑·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 등 100여 종에 이르는 아리랑에는 민초의 질박한 삶이 녹아 있다. 민족 전체의 애환도 스며 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불렸던 광복군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을 개사한 노래였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천아리랑 또한 독립군가로 사용됐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은 노래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대표했다. 한국 영화의 선구자인 춘사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이 부른 아리랑. 춘사와 김산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똑같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갔다. 두 사람은 항일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민족은 다시 한 번 아리랑고개를 넘어갔다. 이후 남북 간에 생성된 냉전과 반목의 역사, 남북정상회담, 남북교류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은 필연적으로 아리랑고개를 숨가삐 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은 남북화해의 구심점으로, 또 민족동질성 회복의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약 100년간의 시대정신을 노래 아리랑으로 접근을 시도하면서 1920년대 이후 사라졌던 영천아리랑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금 부활한 극적인 사연도 흥미롭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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