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식한류'…중국, 한국의 맛에 빠지다

베이징의 한국식당 '수복성'

가족끼리 둘러앉아 '생등심'을 구워 상추에 싸 먹는 이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들이다. "한국음식점에 자주 오느냐"고 묻자 차오지엔(曹劍)씨는 빙그레 웃더니 지갑속에서 이 식당의'멤버십카드'를 꺼낸다.

한국식당 '전주관', 저녁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이들 중 절반은 중국인이다.

13억 거대인구의 중국이 한국의' 맛'에 빠져들고 있다. 드라마와 노래로부터 시작된 한류가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음식은 한 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대표적인 문화양식이다. 한국음식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인식은 사스(SARS)파동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김치가 사스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고 계속된 한국드라마 방영과 2005년 9월 후난(湖南)위성TV가 방영한 드라마 '대장금'이 음식한류에 불을 지폈다.

'地大物博'으로 표현되는 중국대륙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만큼 각 지방마다 음식도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그런만큼 지금까지는 한국음식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류열풍은 한국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을 바꾸고있다.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한국요리를 맛보기위해 한국식당을 찾았다가 한국음식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관의 종철수(宗哲洙)사장은 "한번은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나온 갈비를 먹을 수 있느냐고 해서 양념갈비를 제공했더니 아주 흡족해하더라"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드라마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보고 또 보고'는 현재 중국 CCTV가 재방송하고 있다.

음식한류는 불고기 등의 한국음식뿐 아니라 된장, 고추장등 우리의 전통장류와 유자차 등의 소비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공사의 '농축산물 대중국수출현황'에 따르면 된장의 중국수출액이 2003년에는 93만9천달러에 불과했지만 2004년 111만달러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 9월까지 264만달러에 달해 전년동기대비 402.9%나 급증했다. 고추장은 2003년 32만9천달러에서 2004년 70만5천달러로 두배이상 증가했고 유자차는 2003년 33만7천달러에서 2004년 105만2천달러, 2005년 9월 현재 212만2천달러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베이징의 까르푸 등 대형할인매장과 당다이(當代) 등의 백화점에서는 한국산수입식품전용코너를 두고있다.

유통공사 베이징지사 조학형(趙學亨)지사장은"대장금이후 한국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굉장히 좋아졌다"면서 "중국경제가 발전하면서 고소득층이 식품안전에 눈을 뜨고 특히 한국식품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음식한류의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에는 불고기 등을 주메뉴로 하는 한국식당은 물론이고 설렁탕, 곰탕 등과 감자탕, 순두부전문점 등의 한국 특색음식점들도 속속 둥지를 틀고있다. 한국식 자장면도 자장면의 본고장을 공략하고 있고 한국의 유명빵집들도 중국인의 입맛을 새롭게 하고 있다.

대장금열풍은 대장금마케팅으로 연결되고 있다. 상하이(上海)에서는 '대장금'상호를 내건 한국식당이 문을 열었고 전주관 등 베이징의 한국식당은 궁중음식을 중심으로 하는'대장금정식'을 내놓았다. 30~40가지 요리가 나오는 대장금정식은 최저120위안(1위안은 135원)에서 320위안까지 꽤 비싼 가격이지만 인기를 끌고있다. 이런 열풍은 특히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식당과 한라산, 삼천리 등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불고기전문점들의 매출을 30%이상 늘게했다. 수복성과 서라벌 등 고급한국식당의 매출은 5~10% 증가에 그치고있다. 이는 중국중산층들의 지갑을 열기에는 고급한국식당의 가격 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아직까지 한국 정통의 맛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조선족 식당을 찾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5~10%매출증가도 음식한류가 이제 시작된 시점에서는 적잖은 의미라는 지적이다. 수복성 온대성(溫大成) 사장은 "매출을 떠나서 음식천국인 중국에서 한국음식이 화두가 된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한국음식은 불고기다. 중국인들은 원래부터 육류요리를 즐겨먹고 있지만 탕수육이나 위시앙로스처럼 튀기거나 기름에 볶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양념을 하거나 신선한 생등심,생갈비 등을 숯불에 구워먹는 한국식 불고기는 전혀 새로운 개념인 셈이다. 온 사장은 "중국인들이 한국불고기에 감탄을 금치못한다"고 전한다.

'수복성'은 2004년 1월 중국정부가 특급식당으로 지정했다. 외국식당으로는 T.G.I 프라이데이에 이어 두번째다. 이에 대해 온 사장은 "한국의 음식을 문화로 정식인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음식한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낙관과 우려가 교차한다. 하강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과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세계속에 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과 각 나라의 문화에 맞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하루아침에 한국식당을 찾던 중국인들이 발길을 뚝 끊지는 않겠지만 현재와 같이 대장금열풍을 틈탄 우후죽순격의 한국식당 진출은 중국인들의 입맛을 식상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한국음식메뉴의 개발과 맛과 질의 향상은 물론 고부가가치 메뉴의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대장금열풍을 타고 궁중요리를 상품화한 대장금정식이 인기를 끌고있지만 우리의 궁중요리로는 중국인의 입맛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없다. 중국인들은 궁중요리의 주요리격인 신선로를 중국의 훠궈(중국식샤브샤브)와 다름없다고 여긴다. 훠궈는 대중적인 중국요리의 하나다.

개별 음식점들이 고부가가치의 한식메뉴를 개발하기 어렵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고급한식요리를 개발, 보급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절실하게 들린다. 더불어 프랑스와 이태리, 태국 등이 전세계에 진출해 있는 자국의 고급식당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야한다.

중국의 80년대는 홍콩과 대만의 대중문화가 휩쓸었고 90년대는 일류(日流)바람이 일었다. 7~8년전 중국에서는 인도열풍이 불었다. 한류 역시 한국과 중국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한때의 유행병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베이징·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 : 드라마 '대장금'을 이용해 한식을 선전하고 있는 중국의 한국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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